생각에 집중하는 1시간
엄마 졸려?
커피마시면서 자면 어떻게!!
아들은 내가 눈만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이 들 줄 아는 모양이다. "엄마, 자지 마!" 걱정스럽게 나를 깨운다. 사실 내가 눈을 감는 건 졸려서가 아니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집중하게 되는 습관 같은 행동이다. 처음에는 작업실에서 조용한 순간에 혼자 한두 번씩 해보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버렸나보다. 그래서 가끔 식탁에 앉아 있을 때도 무심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날도 커피를 마시다가, 동화 작가와 주고받은 일러스트 의견을 정리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내가 그린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있었다. 아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니 내가 눈을 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냐, 엄마 안 자. 그림 그리고 있었어"
" 누군가 지나가다가 양팔을 벌린 채 눈으로 화살을 좇는 궁사를 본다면 그가 정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동료는 활을 쏜 이의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향했음을, 이제 그가 온 우주와 교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 파울로 코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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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감는 건 시각적인 자극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나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매우 민감하다.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단순한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일종의 예술적 자극으로 한순간에 다가온다. 어떤 것은 흥미를 끌어 영감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나중에 꺼내 쓰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자극들이 쌓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그 속에서 내가 정말 생각하고 싶은 것을 찾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아 시각적 정보들을 차단하고 머릿속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더 이상 외부 자극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에 집중하기 쉬워진다. 주변의 소음이나 사람들의 움직임도 어느 정도 사라지고, 오직 내 생각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눈을 감고 나면 머릿속에는 마치 순간적으로 우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무한의 공간이 펼쳐진다. 그 공간은 가끔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일 수도 있고, 때로는 환한 빛이 비추는 넓은 곳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에 나만의 일러스트를 그려본다. 실제로 손에 붓을 들고 그리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에서 그리는 과정은 비슷하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배치하고 색을 입히며, 점점 더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보며 좀 더 깊은 나의 사유를 탐구한다.
"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명랑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가 요즈음 마음속 가득히 느끼고 있는 감미로운 봄날 아침의 분위기 같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마련된 듯한 이 고장에서 나는 지금 홀로 삶을 즐기고 있다. 친구여,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내가 조용하고 아늑한 감정에 잠겨 있기 때문에 내 예술은 손해를 보고 있지만 말이야. 나는 지금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가 훌륭한 화가였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
괴테의 말처럼, 내 마음속에서 느끼는 깊은 감정은 종종 내가 가장 예술가다운 순간을 느끼게 만든다. 비록 그것이 당장 현실에서 표현되지 않더라도, 그 순간 나의 내면에서는 수많은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이 쌓여 나의 작업과 상상력이 더 풍부해지는 것이다. 비록 이 순간이 잠깐의 휴식처럼 보일지라도, 내 안에서는 무한한 상상력이 깨어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나에게 눈을 감는다는 것은 내가 창작자로서 더 깊이 몰입하고,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주1) 아처 The Archer, 파울로 코엘료,
(주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믿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