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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17. 2024

호주엔 친구가 없다.

메이페이퍼 ㅣ 나는 호주에서 5살이다 ㅣ 11

10년 전. 한국에서 있던 일이다.


딸 친구의 엄마전화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다.


오늘이 딸 생일이라며?

잠깐 선물만 주러 갈게.

에이~  괜찮아.

벌써 사놨어.

잠깐 주고만 갈게.

내 딸이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해서~

잠깐이면 돼.

금방 갈게~


딸아이 초등1학년 생일날이었다. 4월 5일.


난 그날, 딸아이를 위해 친구를 초대하는 생일파티는 준비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둘째를 유산하고 몸을 추스를 때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끼리 조촐하게 아침에 미역국을 먹고,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것으로 우리만의 생일파티를 끝냈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생일파티는 계획하지 않았다.


근데, 그날. 나와 친한, 아니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던 언니가 자기 딸한테 들었다면서 굳이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잠시 들른다 했다. 나이도 나보다 많다고 첫날부터 반말을 하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언니의 방문.


아~

부담된다

오지 말지

살짝 귀찮네

집 치워야겠다

와서 제발 빨리 가라

편하게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이 게 왠 날벼락!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온다.)


한 시간 즈음 지났을 무렵, 진짜 그 언니는 내 앞에 나타났다. 손에 선물을 들고 문 앞에 서있었다. 나는 현관에서 대화를 하고 그녀를 다시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 언니의 눈빛에 우리 집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잠깐 들어올…”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나의 허락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전화를 한다.

어~ 나 잠깐 어디 들르느라, 조금 늦을 거 같아.

아~ 선호 알지? 어어~ 맞아. 그 애. 오늘 생일이래.

어~ 그래서 잠깐 생일 선물 주러 왔어.

그럴래? 그래~


전화 속 엄마도 우리 집으로 온단다. 내가 잘 모르는 엄마다.


그리고 결국, 30분이 지났을 무렵, 두 번째 엄마는 또 다른 엄마들을 동원해서 우르르 찾아왔다.


축하를 해준다고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온 엄마들과 아이들이 우리 집을 꽉 채웠을 때,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들에게 내어줄 음식을 아무리 뒤적뒤적 찾아봐도 나오질 않았다. 그러다 결국 저녁시간이 되었다.


“피자라도 시킬까요?” 물어보는 순간.

첫 번째 엄마의 한마디.

아냐 아냐 생일파티 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이제 갈게.


그들은 집에 남아있던 과일 몇 조각과 한 두 봉지의 과자들만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딸아이의 생일은 4월 5일. 초등 1학년이 시작되고, 슬슬 아이들끼리 친해지고, 엄마들끼리도 친해지는, 그러한 애매한 우정이 있는 4월에 내 딸의 생일이 있었다.


근데, 난 몰랐다.

그날의 모든 상황이 그 첫 번째 엄마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그 엄마는 내 딸이 자기 딸과 같은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한테 엄청 잘해 줬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엄청 내 흉을 보고 다녔다고 한다. 난 그것을 다른 엄마를 통해, 한 참 후에 알았다.


"그 엄마 조심하세요. 생일날 먹을 것도 안 주고 돌려보냈다면서 흉보더라고요."


사실, 난 그 첫 번째 엄마가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진 이었기에, 처음부터 그녀와 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딸아이를 위해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당할 줄이야. 자기 딸을 위해, 나의 딸의 동향을 살펴야 했기에, 그녀는 항상 나를 옆에 두었고, 나는 그렇게 그녀에게 희생된 것이다.


그 후, 나는 1년 내내 그 엄마의 이간질로 인해 조용한 왕따?를 당했고, 6년 내내 난 그녀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호주로 이민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현지 한인들 사이에서 나는 굴러들어 온 돌이었다. 어느 날, 호주에서 태어난 아이의 엄마와 조기유학을 온 아이의 엄마가 싸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조심스러웠다. 아들의 친구 엄마와 잠깐 친해질 기회가 있었지만, 난 조용히 나 혼자 살기로 결정했다. 그저 호주의 자연을 빌려 쓰는 것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실제로, 코비드로 인해 현지 한인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호주에서는 상처받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기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바쁘다는 핑계로 - 실제 너무 바빴다 - 그들의 단톡방에 조인하거나, 그들의 아침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를 그들로부터 멀리 두었다.  






지금 나는 호주에서 일회성 친구는 사귀지 않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친구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호주에 친구가 없다.

그래서 더 좋다.


대신,

나의 가치를 소중히 해주는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과 만날 때는

나도

그들도

서로 행복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

서로에게서 또다시 에너지를 받는다.


호주.

한국의 친구들이 그립지만,

가끔은 친구가 없어 외롭지만,

그리움도 계속 커져가지만,


그만큼 그들의 소중함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집에서 바로보는 뒷마당. 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논다.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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