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썸머타임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여유 1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 시간은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나의 일상을 더욱 체계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 기회로 여겨졌고, 머릿속에는 새로운 루틴과 목표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2주째에 접어든 지금, 나는 그 1시간을 전혀 계획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을 그저 침대에 누워, '생각'만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잠결 속에서 나의 생각들이 마치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내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새벽의 적막함 속에서 생각은 나의 무의식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나는 즉시 나의 의식이 그 ‘생각‘들에 휩쓸리지 않도록 감정과 반응을 최대한 배제하려 애쓴다. 이는 나의 의식이 주도적으로 생각을 해석하거나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자아가 그 순간에 개입하지 않도록 통제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 통제는 마치 관찰자처럼 뒤로 물러나 나의 생각을 지켜보게 만드는 동시에, 나의 감정적 반응을 벗어나 순수한 사고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게 나의 의식을 감정에서 떼어낸 후, 새롭게 흐르기 시작하는 나의 생각들을 따라가 보면, 이 순간은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그 생각들은 무작위적이며 계획적이지 않은 것들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거나 혹은 그저 그 흐름을 즐기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얻어진 생각의 방향성은 나의 관여 없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발전해 가는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아주 엉뚱한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꿈속에서만 일어날 것 같은 비현실적인 생각들이 내 안에 자리 잡을 때, 그저 그 순간을 감사히 여길 뿐이다. 나는 이 엉뚱함이야말로 나의 창조적 사고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들에 떠오른 생각들은 이후 나의 브런치 글이 되고, 내가 그릴 일러스트의 영감이 되며, 혹은 나의 일상에서 필요한 지혜로 변모하기도 한다. 창의성은 철저히 계획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무작위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에서 싹트는 것이기에 이 새벽의 1시간이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그 생각들을 흘려보내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머릿속에서 맺히는 중요한 생각들은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글로 적어두거나 그림으로 남기고자 노력한다. 혹은, 그 생각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만들어 냄으로서 나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기록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흐름 속에서 한 가지의 포인트만을 분명하게 기억해 두면 그로 인해 다시금 생각의 흐름이 그대로 재현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는 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생각이 아니며, 내가 그 과정에 관여하여 왜곡된 것도 아니기에 나의 기억 속에서 그저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두는 것만으로도 속도는 느리지만, 다시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마치 철학적인 사유의 여정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자주 나의 생각을 통제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끌어내려는 습관을 만들고자 했지만, 때로는 생각이 나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주)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에 존재하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진리. 그 진리는 내가 억지로 찾으려는 순간 사라지지만, 그저 흘러가도록 두었을 때 나에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니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나의 생각들과 조용히 함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생각은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그저 자연스레 흘러가며 나의 새로운 하루에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생각'이 아닌, 나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인 듯도 하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깊은 사유 속에서 새롭게 열리곤 한다.
(주)플라톤의 이데아: 플라톤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현실 세계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참된 실재를 이데아라고 개념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