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영어수업이었다. 한 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이었지만, 이날은 그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자극도 받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 그대로를 튜터에게 전달했다. “오늘은 그냥 말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그래? 그럼 오늘은 말하지 마. 네가 오늘은 나와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잖아. 나는 네 생각을 존중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튜터는 나의 생각을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안도감은 꽤나 신선하고 새로웠다.
하지만 그렇게 침묵을 택한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 날 따라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왜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충동을 느꼈을까? 나도 나의 행동이 의아했기에 그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다시 대화로 이끌었다. 결국 나는 왜 내가 침묵을 원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꽤나 어색하지만 깊이 있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 대화의 방향은 예상과는 달랐지만, 그날의 수업은 여느 때보다 진실된 소통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영어 수업에서 열심히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한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상대방을 향한 배려라고 여기곤 했다. 그리고 그러지 않았을 때는 왠지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침묵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난 뒤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이날의 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솔직한 소통이었으며, 내가 그동안 감추어왔던 진실된 감정들을 드러내는 수업이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나는 그날 내가 얼마나 용감해졌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사실은 내게 큰 의미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배려’ 혹은 '두려움'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을 억누르고 상대에게 맞추기보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그날 내가 한 시간 동안 침묵을 택한 이유에 대해 깊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내 생각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말을 안 하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에서 더 나아가, 왜 내가 침묵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할 수 있었고, 내 감정에 반하는 행동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곧 나의 생각을 존중하는 행위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예전에는 상대방에게 배려를 보이기 위해, 혹은 상황에 맞춰 말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느낀 것은,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배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는 것은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며, 그 솔직함이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내 감정과 생각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튜터가 나의 생각을 존중해준 것처럼, 나도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 듯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었던 것처럼, 타인에게도 그들이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서로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