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꽃들을 관찰하다 보면 이곳 꽃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나라의 꽃들도 이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이러한 형태로 피어나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며칠 전, 시내를 거닐다가 마주한 꽃 또한 그러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감탄하던 중, 나는 그것이 이미 다 피어난 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줄기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그 꽃 안에서 피어올라, 이내 새로운 형태로 변해 있었다. 마치 하나의 꽃 속에 무수한 다른 꽃들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이 꽃의 진짜 모습이란 과연 무엇일까? 물론, 이 모든 형태를 아우르는 존재 자체가 이 꽃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채로운 모습 중 하나를 대표로 기억하며, 어떤 순간을 그 꽃의 본질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요즘 들어 나 역시 내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여러 성격의 모습들을 마주하고 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말이다. 그 모습은 부정적인 것이기보다는,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모습들이 내 안에 잠재된 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그간 감춰져 있던 그녀에게 조용히 말을 걸고, 부드럽게 세상 밖으로 조금씩 인도해 보니, 어느덧 그녀가 나를 대표하는 모습이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건 어제 글로 적었던 진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지난주에 생각한, 내가 지닌 여러 버전의 나를 활용하는 것과도 다른 차원의 발견이다.
나는 마치 40년 넘게 나 자신을 잘못 설정해 놓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주변의 반응에 따라, 나는 내성적이고 두려움이 많으며 대화를 주저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해 온 것 같다. 그러나 그 모든 외부의 시선과 나를 가득 채웠던 잘못된 생각들을 걷어내고 비워내자,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숨죽이며 기다려 온 진정한 나 자신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는 듯했다. "나 여기 있어. 오랫동안 기다렸어."
지금 나는 내 안 깊숙이 숨어 있던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마치 오랜 시간 기다리며 자신을 감추고 있던 존재들을 하나씩 불러내듯이, 조심스레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새, 내 안에서 한결같이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나를 기다린 듯하다. 나는 그들이 내 안에 있었음을 이제야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마치 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던 씨앗처럼, 그들은 나의 손길이 닿자마자 조용히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켠다. 그들에게 따뜻한 햇빛을 비춰주고, 물을 주며 그 존재를 하나씩 세상 위로 꺼내 놓는 이 과정은 낯설면서도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모습들이었다. 과거의 나에게 늘 두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렇기에 감히 꿈꾸기조차 어려웠던 모습들이다. 이제야 그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내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것을 느끼는 중이다. 마치 나를 기다리던 나 자신의 조각들이 하나둘 완성되어 가는 순간처럼, 나의 세계가 새롭게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를 하나로 만들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속삭인다.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 꽃을 피워도 된다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이제는 내가 내 안에 있던 모든 모습들을 온전히 드러내주겠다고.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새로운 나와 마주하고 있다. 마치 한 송이 꽃 속에 또 다른 꽃이 끊임없이 피어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