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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Nov 04. 2024

나는 내가 테스트한다.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하자!"


지난 토요일 새벽, 문득 마음 한 구석에서 즉흥적인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꾸준히 이어갔던 운동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여러 가지 이유로 소홀해졌고, 이후 내 몸은 점점 더 책상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러자 내 몸이 작은 신호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주 붓고 묵직해진 몸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매일을 시작할 때마다 조금씩 밀려오는 무게감이 평소의 일상에 스며들며,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 듯했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 7시 15분, 나는 필라테스 그룹 수업에 참여했다.


그날 수업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오랜만의 운동이라 내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새로운 강사의 수업 방식도 익숙지 않았다. 그녀의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발음은 다소 알아듣기 힘들었고, 함께 운동하는 동료들은 모두 경험자들이었다. 수업은 그들의 수준에 맞춰 중급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건 버겁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조금씩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불편함과 낯선 경험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차분히 구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익숙지 않은 동작과 낯선 환경 속에서, 나는 마치 한 걸음 물러나 지금의 나를 낯설게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각 동작마다 느껴지는 불편함이나 약해지는 지점은 단순히 근육의 피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묻는 순간 같았다. 


순간 필라테스를 처음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개인 수업에서 처음 내 몸 상태를 확인하던 시간 속에 있었다. 강사는 나의 움직임을 분석하며 세밀하게 평가했고, 나를 점검하는 모든 기준을 그녀에게 의지했던 내가 있었다. 그녀가 작성해 준 차트를 기준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동작과 부족한 점들을 기록했고, 나는 그녀가 정한 레벨에 맞춰 수업을 따랐다. 그때의 나는 나를 발견하기보다는, 타인의 판단에 내 능력을 기대며 따르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 이번 그룹 수업에서 그 모든 평가는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나의 한계를 측정하고 경계를 가늠하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으며, 한때 타인의 평가에 의존했던 나는 이제 스스로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내 몸의 어느 부분이 한계에 직면하는지, 언제 집중력이 흐려지는지를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과정은 단순히 체력을 체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의 중심을 찾고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결국 나만이 나를 지탱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수업을 마치고 "힘들다"는 단순한 감정으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포기하거나 초급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힘든 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부족한 점들을 인정하고 채워가는 과정이 곧 성장이라는 것을, 그렇게 채워가는 과정이 결코 내 외면의 틀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의 내면을 채워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 순간 깊이 느꼈다.


내가 약한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조금씩 단련해 나가는 이 과정은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약하게 하는지, 왜 그 점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그렇게 성장해 가며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더해가는 것. 그 모든 것은 단지 운동을 넘어서서 나의 생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고 있었다. 필라테스를 통해 내가 익히고 있던 것은 단순히 신체적 단련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법이었다. 






ㅡㅡ

오늘 새벽, 나와 같은 생각을 담은 글을 책에서 발견했다.


"Growth is attained through an exchange of the old for the new, of the good for the better; it is a conditional or reciprocal action, for each of us is a complete thought entity, and the completeness makes it possible for us to receive only as we give. We cannot obtain what we lack if we tenaciously cling to what we have. Charles Haanel"


성장은 옛것을 새것으로, 좋은 것을 더 나은 것으로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는 조건적이거나 상호적인 작용으로, 우리 각자는 완전한 사고의 존재이기에 주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다면, 부족한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 찰스 해낼




(주) The Master Key System, Charles F Haanel, StMartin's Essentials New York,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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