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영국 소녀의 브이로그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관찰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상은 더 이상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나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성장의 지표이자 잣대로 자리 잡았다.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는 반복이 어느새 나의 목표와 기준이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영상 속 그녀의 삶은 변하지 않지만, 그 영상을 마주하는 나의 귀와 눈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가장 먼저 그녀의 독특한 영국 억양에 익숙해져야 했다. 낯선 발음, 미묘한 억양 차이, 그리고 빠른 말하기 속도는 나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한글 자막을 켜놔도 그녀의 빠른 말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3개월마다 반복 시청할 때마다,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속도는 점차 귀에 익어갔고, 어느 순간 자막을 읽는 것보다 귀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다. 더 시간이 지나서는 자막을 꺼놓고 배경으로 틀어놓기만 해도 영상의 내용을 놓치지 않게 되었을 때, 나의 리스닝과 이해력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이 브이로그를 찾아보는 것은 단순한 확인이 아닌, 나만의 성장을 일깨워주는 의식과 같았다. 그녀의 일상 속에서 들리는 소리, 빠르게 지나가는 단어들 속에 내 작은 성취들이 쌓여갔다. 소리와 의미가 어딘가에서 만나, 나만의 해석과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순간, 나는 소리의 울림 속에서 나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너머의 깨달음과 내면의 성장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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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하게, 요즘 나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나의 삶과 자신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확인하곤 한다. 과거에 그저 글자 그대로 다가왔던 문장들이 이제는 더 깊은 감정과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으로 다가온다. 책 속 문장 하나하나가 삶의 작은 순간들과 맞물리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마다, 내 내면이 더 넓어지는 것을 실감한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고, 같은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이전보다 더 깊어진 나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제부터인가, 나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마주하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나의 변화와 발전을 가늠하려 해도, 이제는 그 거리를 느낄 수 없었다. 두 시점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어제와 오늘이 분리된 것 같은 기묘한 감각까지 들었다. 이 생각은 오늘 새벽까지도 점점 확장되며,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변화의 무게가 더욱 깊게 다가온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글을 쓰기 직전, 하나의 동화와 그 일러스트가 80% 이상 완성된 상태에 이르렀다. 머릿속으로 그려낸 그림이었지만, 그것이 단순한 발전이 아닌 진화처럼 느껴졌다. 내 안의 강점들이 서로 어우러져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 듯했다. 시간 속에서 나의 예술과 생각은 단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무언가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는 기존의 나를 넘어, 또 다른 존재로 진화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그 동화 이야기는 노트북에 담고, 일러스트들은 스케치북에 남겨 또 하나의 동화로 발전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동화 역시, 또다시 진화해 새로운 형태로 거듭날 것이다. 나의 성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