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트 클래스를 신청한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처음부터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예술을 즐기며, 서로의 표현과 감상을 나누고 활기찬 시간을 보내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첫 수업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이곳의 분위기가 상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림을 사랑하고 그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나 교류로 그 열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오롯이 침묵 속에서 각자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것이 더 익숙한 듯했다. 캔버스 앞에서 각자가 고요한 순간에 몰입해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왠지 장엄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유일한 대화는 아침에 주고받는 짧은 굿모닝 인사와, 가끔 교수님과 나누는 몇 마디의 그림 이야기 정도였다. 그러던 중, 어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기로 했다. 고요를 깨고 들려오는 다른 학생들의 대화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보고 싶었다. 평소 호주인들의 토론 방식에 흥미를 느꼈기에, 그들의 생각과 표현에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다.
대부분의 대화는 각자의 그림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현재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의 그림에 대한 칭찬과 조언으로 채워져 있었다. 교수와 학생 간의 대화는 때로 더 깊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이에 교수님의 대답은 언제나 일관되었다. “이건 연습이야. 실험하는 시간이지. 부담 내려놓고 그저 그려봐.”
주위의 소리에 집중하던 중, 우연히 뒤편에 계시던 두 분이 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내가 미술을 전공했고, 그림을 잘 그리며 매번 각 그림마다 나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표현한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속으로 미소 지으며 모른 척했지만, 지난 학기에 내 양옆에 앉았던 두 분이 생각났다. 그들은 한 학기 동안 내 그림과 자신들의 그림을 비교하며, 그로 인해 느꼈던 어려움이나 고민을 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학기에는 그분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미안함을 느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3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그 순간 흥미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게 나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나의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 이곳에서 고유의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수백번 수천번의 수정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지는 그림이 나오고, 나는 나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와의 비교에서 느끼는 부담 대신, 나의 작업 과정을 함께 보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요즘 유튜브에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담은 영상들이 많다. 마치 그들 앞에서 나의 창작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느낌처럼, 완성된 그림은 단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로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그들이 그것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작업 과정을 공개한다는 것은 결과만큼이나 의미 깊은 일일지도 모른다. 한 점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은 하나의 작은 세계가 창조되는 여정과 같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실패와 좌절, 반복과 수정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과 기쁨을 얻기도 한다. 작품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지만, 진정한 가치는 그 여정에 깃든 흔적들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완성된 그림을 통해 나를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 역시 그들처럼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 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호주에서의 아트 수업 기록'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다만, 앞으로 발간할 브런치북 [나의 삶에 호주를 담다]에서 아트 수업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