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호주에서 아트 클래스를 새로 시작하면서, 삼원색과 흰색만으로 무한한 색을 만들어 보는 실습이 내 창작 과정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림, 디자인, 글이라는 세 가지 도구. 나에게는 마치 3원색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이지만 필수적인, 그 자체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재료들. 나는 이 세 가지를 자유롭게 혼합하고 변형하며 내 안에서 새로운 색을 발견하는 과정이 곧 나만의 창작을 위한 본질임을 깨달았다. 또한, 모든 예술이 단순한 기본에서부터 시작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 깊어졌다. 내 창작은 이러한 기본적인 요소들 속에서, 때로는 그 단순한 재료의 순수함을 통해 더욱 순수하고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더 많은 색을 원하던 예전의 나와 달리, 표현의 깊이는 선택지의 수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달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트 클래스에서 3원색과 흰색 물감만을 사용해 여러 그림들을 완성해보는 실습을 하며, 색의 수에 대해 집착해 왔던 내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예전에는 색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색을 다루는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에 구입해 둔 18색의 과슈 물감을 다시 꺼내 들고 색 샘플 페이지를 만들면서, 순간적으로 3원색이 아닌 나머지 15색을 과연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더 정확한 비율로 만들어진 색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결국 내가 만든 색이 아니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3원색과 흰색만으로 색을 창조해 내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술이란 결국, 자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색과 표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발견하는 중이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저자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서로 공통된 주제나 사상이 담겨 있다. 모든 이야기는 인간 경험의 큰 흐름 안에서 흘러가는 여러 가지 표현일 뿐, 그 중심에는 결국 비슷한 진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르가 다르다고 해도, 결국 동일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책 한 권 한 권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하는 다양한 빛깔을 띠는 것이다. 마치 삼원색이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내듯, 작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일한 주제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단순히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서 더 깊이를 더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했다. 많은 색을 가지는 것보다 주어진 색을 얼마나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지나온 모든 순간들을 나만의 색깔로 재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단순한 선택이더라도 그 안에 담긴 가능성과 나를 위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읽고 쓰고 창조하는 모든 예술 행위는 한 가지 진리를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조란, 주어진 재료와 제한된 요소 안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탐구해 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단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구성해 가는 것이다. 비로소 이러한 창조의 길에서 나에게 맞는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