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 삶에 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어찌 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나 자신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언제나 움츠린 사람이었다.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 주변엔 타고난 천재들, 영재들, 한마디로 빛나는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에 반해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노력형'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일찌감치 그 경쟁을 포기했고, 그저 평범하게 명문 대학을 목표로 삼고 공부하며 살던 학생으로 남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무기력은, 자그마한 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말없이 주저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다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헌신하며 그들의 필요에 맞추어 살아갔다. 언제나 조력자로서, 지지자로서 그들 곁에 서 있으려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그저 '아이들의 엄마'로만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나라는 이름은 어느새 희미해져 갔고, 나의 하루는 그들을 위한 헌신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나의 삶을 살기보다 그들 뒤에 서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혔었다.
그무렵 15년의 경력 단절을 마주한 나는 스스로를 위한 변화를 결심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고, 그것이 나에게 호주로의 이민이라는 결단으로 이어졌다. 타국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곳은 대학 부설 어학원으로, 수백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며 나이도 다른 학생들보다 두 배는 많았었다. 처음엔 이러한 고립감이 나를 짓눌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질감이 오히려 나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들과 다른 내 안의 특별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언어 장벽 앞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성실함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그 속에 감춰진 포용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들은 그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과 새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타국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렇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점차 나의 색깔이 드러났다. 나는 비로소 내 삶 속에서 나 자신이 지닌 고유한 색깔을 자각하게 되었고, 내 안에 있던 자신감과 자긍심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삶은 정말 독특한 여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전공하며 자라왔고, 대학교에서는 한국화, 패션 디자인을 공부해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다. 8살 터울의 남매를 키우며, 또다시 호주에 와서는 디자인 대학원을 다녔고, 이제는 그림과 글로 새로운 꿈을 품고 있다. 이 모든 경험들이 겹겹이 쌓여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역사가 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여정을 걸어온 사람이 또 있을까? 이 길은 내 길이다. 물론 이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고, 그동안 수많은 도전과 실패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내 삶의 유일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가 지닌 소중함과 내 인생의 고유함을 직면할 때, 비로소 나의 삶이 온전해진다는 것을.
내 안에 자리한 신념과 자신감이 나의 길을 이끌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삶과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뒤로 미루지 않았고, 시대와 나란히 걸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성실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한 번의 기회만이 아니라 백 번의 기회가 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주) 자기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현대지성,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