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나는 한국으로 떠난다. 18박 20일이라는 긴 여정은 이미 몇 달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나서, 이 순간이 올 때까지 여러 가지 감정을 품었다. 이번 한국행은 어쩌면 엄마와 나 사이에 오래전부터 무언으로 연결된 약속의 실현이기도 하다. ‘딸아이의 수능이 끝나면 한국에 와서 실컷 놀다 가라’고, 엄마는 매번 내가 한국에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더 깊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나는 과거의 한국 방문을 떠올려 본다. 언제나 긴박한 일정 속에,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영어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원 공부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아빠를 하늘로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절에는 새벽 4시에 혼자 깨어 공부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빠를 떠나보내던 시간 동안에는 아이들 앞에서 울 수 없었던 울음을 밤마다 삼키며,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애썼다.
그 모든 과정을 알고 계셨던 엄마는 딸아이의 수능이 끝난 후라는 조건을 강조하셨다. 첫손주인 딸아이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는 엄마. 그러나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엄마는 단순히 손주를 위한 바람을 넘어, 이제 내가 ‘편히’ 한국에 머물며 진정한 쉼을 누리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딸아이를 다 키워낸 나에게, 영어 시험도 대학원 공부도 모두 끝낸 나에게, 이제는 나 자신을 돌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는 깊은 사랑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국에서 크게 판을 키워놓은 여러가지 해야할 일들을 나열하려 했는데, 그 중심에 [엄마의 유산]이라는 책을 들고 엄마에게 간다는 생각하니, 이 책을 들고 아빠를 찾아간다 생각을 하니,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가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사랑과 희생이 내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생각할수록, 마음 한편이 묵직해지면서도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엄마는 육아나 살림에 서투셨다. 그리고 늘 바쁘셨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예술중학교 입시 준비를 시작했으니,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바쁜 시간들 속에서도 엄마는 나를 붙들고 놓지 않으려 애쓰셨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셨던 것이다. 그 사랑이 때로는 나를 숨 막히게 했고, 결국 나는 멀리 호주로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와 나는 서로를 조금씩 놓아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연결을 발견했다. 이제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의 어려움과 사랑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작년, 나는 나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며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의 유산]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엄마의 사랑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탐구했다. 사랑이란 단순히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놓아주는 과정에서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엄마와 나는 이제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은 서로를 이해하고 놓아주며 이어진 마음의 끈이다. 이번 한국 방문은 엄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그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을 품으며 나는 내일 한국으로 떠난다. 짐을 챙기며 실질적인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엄마의 집에서, 아빠의 묘지에서, 그리고 내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그 어딘가에서, 나는 그동안의 모든 연결을 되새기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결을 기대중이다. [엄마의 유산] 위대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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