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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06. 2025

멜버른 여행이 남긴 파동

멜버른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3일이 지났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다시 한국으로 5일후 떠나야 하기에, 거실에 펼쳐진 모습들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이다. 멜버른에서 가져온 작은 캐리어는 여전히 열려 있고, 그 옆에는 한국으로 떠나기 위해 꺼내놓은 대형 캐리어 두 개가 존재감을 과시하듯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세탁을 마친 빨래가 옷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 캐리어 여기저기에 머뭇거리는 듯 보였고, 캐리어 안팎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들은 마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도데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온거야?'


어디에 시선을 두든 어수선했고, 정리되지 않은 채로 흩어진 공간은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듯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정리를 못 해서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 혼란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멜버른에서 보낸 8일간의 시간이 내 일상에 던진 파동 때문이었다.


멜버른에서의 나는 조금 다르게 살고자 했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선, 의도적인 '아날로그'적 삶을 경험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아침에 글을 쓰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매일같이 확인하던 메시지 알림, 이메일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를 꺼내어 펜으로 끄적끄적 흔적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내가 세운 단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아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는 노트북을 닫고 그의 하루에 온전히 함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들은 마치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처럼 선명했다. 나의 하루는 아들과 함께 아침을 준비하며 나눈 대화들로 시작되었다. 아들와 함께 걸었던 도시의 거리, 카페에서 나눈 소소한 이야기, 그리고 공원의 잔디밭에 앉아 공유했던 순간들은 모두 현재의 순간에 충실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어쩌면 잊고 있던 인간적인 연결감을 되찾은 것 같았다.


멜버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스몰토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그림을 함께 감상하며 자신의 의견을 내놓던 다니엘까지. 심지어 항상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그와도 현실에서 만난 순간, 그의 말과 표정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생생했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현재'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시간을 과거로 돌려놓은 듯, 디지털 기기가 없던 시절의 평온함을 맛보았다.


그러나 시드니의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시 온라인으로 연결된 삶이었다. 멜버른에서의 8일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만으로도 코로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디지털 중심의 생활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연결되는 이 시대의 편리함 속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단순히 기술적 대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 경험의 두 가지 방식이었다. 멜버른에서 느낀 아날로그적 삶의 매력은 단지 기술을 배제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적인 관계와 현재에 충실한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진정한 대화, 느리게 흐르는 시간, 그리고 의미 있는 순간을 되찾았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온라인 세계는 나를 압도하고 있다. 이메일은 새로운 메시지들로 가득 찼고. 디자인 프로그램을 작동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족들은 모두 온라인 채팅룸으로 숨어버린 듯했다. 멜버른에서의 시간은 마치 꿈같이 느껴졌고, 나는 그 꿈에서 깨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다가오는 한국방문을 준비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멜버른에서 느낀 것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멜버른에서의 경험이 단순히 일회적인 여행의 기억으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였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작은 불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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