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PAPER Issue 01 _ Connection / EP 07.
지난해, 브런치북에 글을 쓰며 호주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를 위해 1년 과정의 자격증 코스를 신청했고, 졸업 비자가 만료되기 전,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자 했다.
외국인으로서 코스를 등록하는 데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고, 한국 방문 후 바로 수업이 시작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12월 31일,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정원이 부족해 이번 학기에는 해당 코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다른 코스를 선택하거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였다.
순간 마음속에 억울함과 짜증이 몰려왔다. "왜 내가 하려는 일을 이렇게 막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가다듬고 이 사건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이 코스에 집중하기 위해 다니던 아트 수업도 보류했었다. 그렇다면 혹시 계속 그림을 그리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아이들 돌봄에 더 집중하라는 신호일까? 아니면 단순히 이 코스가 나에게 필요 없다는 뜻일까?
그 순간,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쓰기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이 말을 떠올리며 억지로 이 기회를 붙잡으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진정 나와 인연이 있는 일이라면 언젠가 다시 이어질 것이고,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루 동안 마음을 정리하며 그림에 다시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순간 또 다른 제안이 찾아왔다. 그것은 다른 책 작업과 관련된 일이었는데,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진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일에 동참하기로 했다. 마치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순서대로 흘러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제자리’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나의 자리를 찾은 듯했다. 내가 계획한 2025년의 목표들은 여러 상황 속에서 스스로 정리되어, 더 체계적이고 깊은 의미를 담아 나에게 다가왔다. 이 경험은 나에게 처음에는 좌절 같았지만, 새로운 가능성과 우선순위를 깨닫게 해 준 기회였다.
결국, 삶은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것이 더욱더 가치 있는 일이다. 그 과정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준다. 지금 나는 내 자리에서,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려 한다.
더 깊은 의미와 연결된 나만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