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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숙소는 교보문고 1분거리

by 근아

한국에 가면, 우리 가족이 머무를 곳이 없다고?


엄마는 홀로 지내시는 작은 집으로 이사하셨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는 그녀에게 충분했지만, 우리 네 식구가 20일 동안 머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오빠 집엔 수험생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를 수용할 만한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과 가격대를 고려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강남역 근처의 작은 호텔이었다. 예약 사이트에서는 4성급이라 했지만, 사실은 원룸 오피스텔을 개조한 호텔. 어쩐지 가격이 저렴하더라.


그럼에도 이곳을 선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엄마 집과 가까운 위치, 딸아이가 친구들을 만나기 편리한 교통편, 그리고 내가 매일 서점에 갈 수 있다는 점. 호텔 문을 나서 왼쪽으로 단 1분만 걸으면 교보문고 후문이 나타난다. 호텔에서 신논현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이 서점은 나의 선택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서점은 내가 호주에서 그리워했던, 한국과 나를 잇는 연결점이었기 때문이다.




서점이 주는 작은 위안


호주에선 항상 아쉬웠다. 한국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는 현실이 그랬다. 물론 전자책으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밑줄을 긋고, 그 옆 여백에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끼적이는 나의 오래된 습관은 종이책만이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전자책으로 읽은 책들을 나중에 종이책으로 다시 사는 일이 잦았다.


지금 나는 그 아쉬움을 한껏 보상받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보문고에 간다. 처음에는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사는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는 중이다. 책이 한 권 한 권 쌓인 서가를 둘러보며, 나 자신도 그 안에 한 페이지로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그리고 그 욕망은 단순히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서서,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한국의 문화와 맥락 속에서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갈증이었다.


서점은 단지 책을 고르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무엇을 읽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에 매료되는지를 통해 나를 다시 만나는 장소였다.




디자인, 책, 그리고 나의 연결


북디자이너로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용뿐 아니라 표지 디자인에도 눈이 간다. 한국에서의 도서 디자인은 서양도서보다 더 많은 일러스트가 담긴 아름다움이 있다. 표지 하나하나에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기와 맥락이 숨겨져 있다.


호주에서 [엄마의 유산] 북디자인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이 한국 도서 디자인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온라인으로 이미지를 찾아보며 리서치를 시도했지만,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실제로 스크린에서 보던 책을 서점에 와보니 더욱더 내 맘에 와닿는 정도가 다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한국 책들은 제목과 디자인에서부터 독자에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나를 집어 들어봐’, ‘나는 너에게 무언가를 줄 준비가 되었어.’라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꽤 흥미롭게 책디자인을 살펴보는 중이다.




한국에서의 ‘낯섦’과 새로운 깨달음


나는 지금 이 낯선 호텔에서 매일 서점에 들락거린다. 아이들과 함께 마실 다니듯 책방을 찾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책을 사고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서 다시 익숙해지는 과정이자, 동시에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낯선 존재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책 몇 권을 든 손이 묵직하다. 책장에 꽂힌 디자인과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호주에서의 삶과 한국에서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린다. 이 두 세계를 잇는 실은 아마도 내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균형일 것이다.


책을 사며 드는 작은 만족감, 호텔 방에서 펼쳐든 책을 통해 얻는 위안, 그리고 내가 지금도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갈망을 느낀다. 이것은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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