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 방문 9일 차 : 조용한 시간을 되찾다

by 근아

하루하루가 점점 멍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마주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혹은 어디선가 일어난 나비효과가 지금 내 삶의 균형을 뒤흔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현재 내가 마주한 문제들이 내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소모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막연히 내일은 괜찮아질 것이라고, 모레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하루를 견디고 있다.


호주에서 조용하고 고요하게 흐르던 나의 삶은 한국에서 거대한 바다를 만나 충돌했다. 잔잔했던 강물의 물결이 거친 파도와 맞닥뜨리며 휘청거리고, 급기야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신없이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다. 처음으로 맞이한 이 거센 파도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중심을 잃었다. 며칠 동안은 그런 혼란 속에서도 나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매 순간 나름의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노력조차 무력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매일 번아웃을 겪고 있는 중이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정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밤 11시가 훌쩍 넘어야 하루가 겨우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친 나는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겨우 잠깐 누워야만 다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 고된 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아침,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손이 떨릴 정도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더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휴대용 와이파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나는 참석하려던 새벽 5시 독서 모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줌 미팅 화면이 꺼진 채로 멍하니 노트북의 바탕화면만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호텔 방으로 돌아가 장비를 챙겨 와 다시 온라인 접속을 시도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조용한 시간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한국에서 매일같이 안정되지 않은 혼란 속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게 그런 조용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20일, 한정된 일정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아이들의 일정에 항상 동행해야 했으며,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여 문서작업까지 해야 했고, 내 모든 시간을 그들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놓치고 있었다.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기회를 잃은 채, 내 삶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릴 여유도, 나의 이야기를 글로 차분히 담아낼 기회도 없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내 시간을 양보한 흔적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국에 와서 과연 나를 들여다볼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잃어버린 나를 되찾을 준비를 하려 한다. 내 안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조용한 시간을 되찾아야 할 때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돈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내면의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이야말로 내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2024년 1월 15일. 오늘을 기록하다.


Screenshot 2025-01-16 at 8.39.14 AM.png


keyword
이전 10화내 꿈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