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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방법'을 알아볼래?

호주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전하는 세번째 편지

by 근아

첫 번째 편지 : '사유'의 시간을 가져볼래?

두 번째 편지 : '사유'는 왜 필요할까?



사랑하는 딸에게


요즘 네가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과목들을 배우며 논문을 읽는 모습에서 보이는 흥미와 열정을 보며 엄마도 참 기쁘단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설레고, 때로는 한순간에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경험을 주기도 하지. 하지만 나는 네가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해.


지식이란 머릿속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거란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그 앎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해.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경험을 쌓으며 배운 것들이 네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 되는 거지.


엄마가 지난 편지들에서 이야기한 '사유'도 마찬가지야. 사유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아는 것만으로는 저절로 성장이 이뤄지지 않아. 사유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그것을 네 삶에 스며들게 하고, 일상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단다.


그래서 오늘은 사유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볼까 해.



그 첫 번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야.


모든 사유는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돼.


"나는 왜 이걸 좋아하지?"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할까?"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지?"


이런 작은 질문들이 깊은 사유의 씨앗이 된단다. 질문하는 습관이 없으면 생각이 표면에만 머물기 쉽지. 마치 수박 겉만 핥는 것처럼 말이야. 질문 없이 생각하다 보면 사고가 흩어질 수 있어. 하지만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사유의 중심을 찾을 수 있지.


질문이 있으면 답을 찾고 싶어 지겠지? 여기서 중요한 건 남들이 다 아는 뻔한 답이 아니라, 네가 찾은 너만의 답이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하고 고민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그게 바로 진정한 사유란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도 계속 질문을 던져 보렴. "작가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이 개념은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면, 네 사유는 더욱 깊어질 거야.


질문하는 힘을 키우고 너만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네 삶은 더욱 단단하고 의미 있어질 거란다.



두 번째는 질문을 던진 후에, 스스로를 관찰하는 거야.


질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떠오를 거야.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어디에서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던지다 보면, 네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과 가능성이 펼쳐질 거야.


여기서 핵심은, 그 생각들이 왜 떠올랐는지까지 깊이 들여다보는 거야.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는 식의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각각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그 생각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는 거지.


어쩌면 여기까지는 네가 이미 해본 과정일 거야.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으며 생각하는 그 과정 말이야. 맞아, 바로 그거야. 하지만 이것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표면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서 네 성장으로 이어지는 묵직하고 깊은 사유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대부분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버리곤 해. 감정이 휘몰아치면 그대로 휩쓸리고, 떠오르는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지나쳐 버리지.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건,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거야.


예를 들어, 어떤 일로 기분이 상했다면, 그저 "아, 기분 나쁘네"라고 넘기지 말고, "왜 이런 감정이 들었을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서일까?" "내 기대와 현실이 달라서일까?" 하고 내면을 깊이 탐색해 보는 거야.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겉으로만 드러나는 감정의 나열을 넘어서 네 생각의 근거를 탐색하는 힘이 길러질 거야. 그 힘은 네가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삶 속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 그게 바로 사유의 힘이고 네가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길이란다.



세 번째, 사유가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하루 이틀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며칠, 몇 주 동안 하나의 주제를 붙들고 고민할 때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어. 우리는 종종 어떤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지만, 깊이 있는 사고는 그 과정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거든.


깊이 있는 사유를 하려면 먼저, 생각의 흐름을 네가 억지로 통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할 때, 사람들은 보통 일정한 틀 속에서 사고하려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사고의 깊이를 더하려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확장되도록 가.만.히 두는 것이 필요해. 가끔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연결이 생기기도 하고, 처음에는 무의미해 보였던 생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스스로 찾기도 하거든.


예를 들어, 네가 요즘 심리학와 해부학에 대해 배우고 있잖아? 거기서 어떤 철학적인 개념을 배웠다고 해 보자.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일상에서 그 개념과 맞닿는 순간이 올 거야. 그때 다시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지. 깊이 있는 사고는 이렇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한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거야. 어떤 주제든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면 사고가 단순해져. "이게 맞아, 저건 틀려" 같은 식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면 어떨까?",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네 사고의 깊이는 더욱 단단해질 거야.


깊이 있는 사고는 마치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것과 같아. 바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너만의 통찰이 자리 잡을 거야. 그리고 그때, 너는 너 스스로를 단단하게 잡아줄, 너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네 번째, 자각과 깨달음의 과정이 필요해


깊이 있는 사유를 거듭하다 보면, 너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한계를 마주하게 될 거야. 처음에는 확신했던 것이 점점 흔들릴 수도 있고, 오랫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단순한 습관이나 외부에서 주입된 것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어. 이런 과정이 바로 자각(Awareness)이야.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깊은 사유를 하다 보면, 자신이 가진 오류나 편견을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오지.


예를 들어, 네가 삶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사실은 부모님이나 사회가 원해서 받아들인 것일 수 있어. 또는 네가 느끼는 감정이 진정 네 마음에서 우러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이런 깨달음(Realisation)은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면서 얻을 수 있어. 새로운 시각은 기존의 사고 구조를 확장시켜 주거든. 다만, 책을 읽을 때도 그 내용이 네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해.


깨달음은 번개처럼 순식간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천천히 물들듯 다가오는 거야. 결국, 네가 가진 신념이 단순한 습관인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인지, 진정한 네 것인지 분별하는 과정 자체가 진짜 성장이야. 그 과정 속에서 너만의 철학과 삶의 방향을 찾아가길 바라.



마지막으로, 사유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해.


깨달음은 끝이 아니야. 오히려 새로운 질문의 시작점이 되지. 어떤 것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이 더 큰 맥락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지거든.


처음에는 너만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질문이 점점 더 철학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될 거야.


예를 들어,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낄까?"라는 질문이

→ "인간은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 "감정은 개인의 선택일까, 환경의 영향을 받을까?"

→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렇게 더 깊어지는 거지.


이렇게 사유가 확장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를 갖게 돼. 단순히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원인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는 거야.


이 과정은 결국 네 행동과 태도를 변화시킬 거야. 진정한 깨달음은 삶의 변화로 이어져. 사유가 진짜 네 것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말하는 태도가 변하고, 선택하는 방향이 달라지지.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사유는 네가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거야. 세상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과 맥락을 고려하게 되지.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편견을 가지는 대신, "왜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할까?"를 고민하게 될 거고, 그 과정에서 너만의 확고한 기준과 철학이 자리 잡을 거야.


결국, 사유의 진화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이야. 질문을 멈추지 않고, 깨달음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다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 이런 순환 속에서 너는 더 깊이 있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거야.







물론 지금까지 한 이 이야기들이 너에게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어. 아직은 네가 고민하는 문제들이 다소 단순해 보일 수도 있고, 이런 깊은 사유가 당장 필요한 순간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엄마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너에게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어서야.

지금이 아니더라도,

네가 사회로 나가 더 큰 힘겨움을 마주했을 때,
이 과정이 너에게 필요하다고 믿거든.


세상을 살다 보면,

단순한 공식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아.
시험 문제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순간들이 찾아오지.


그럴 때,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대신,
네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길 바라.
그 힘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경험하고,

내면에서 길러진 사유에서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설령 지금 이 이야기가 어렵더라도
네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 두었으면 해.
언젠가 정말 필요할 때,
이 과정이 너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테니까.






그럼 다음 편지에서는 앞에서 엄마가 말한 ‘너만의 철학’이 어떤 것인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줄게.

그때 또 이야기하자~




엄마가,

2025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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