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maypaperkunah/704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에 참여중입니다.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정신을 편지로 쓰고 있습니다. 편지의 일부입니다.
아이야,
엄마는 모든 이들의 인생에
적어도 자신만의 회오리가 4개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둘러싼 여러 힘이 충돌하고 얽히는 그 격랑 속에서야말로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고 믿거든. 하지만 그 4가지 회오리는 단순히 반복되는 동일한 경험이 아니야. 각각의 회오리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서로 다른 역할을 하게 되지.
첫 번째 회오리는 탄생과 성장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내면의 성장을 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내가 속한 환경 속에서의 성장을 담당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반복되면서
나선형의 길을 따라 이어져 나가는 거야.
조금 더 간단히 말하자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난 후,
내 안에 하나의 회오리를 품고,
나 스스로가 또 하나의 회오리가 되어
무한히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 거지.
첫 번째 회오리는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된단다. 믿기지 않지? 아주 작디작은 세포 하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점 하나일 뿐인데, 회오리라니. 하지만 그건 마치 우주처럼,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돌기 시작한단다. 세포가 나뉘고, 형태를 이루고, 심장이 처음으로 쿵 하고 뛰기 시작하면서 말이야. 그 모든 순간 속에서 아기만의 리듬이 생겨나는 거지.
너에게도 그러한 첫 번째 회오리가 있었어. 그 미세한 회전이 점점 커지면서, 엄마 몸속에서 ‘너’라는 존재가 자라나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너만의 속도, 너만의 방향, 너만의 움직임이 만들어졌지. 그건 단순히 생명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외친 너만의 첫 목소리였어—‘나, 여기 있어!’
그 첫 회오리가 바로 너 자신이었던거야. 급기야, 그 회오리의 힘은 엄청나서 엄마의 모든 신경을 너에게로 향하게 했단다. 말하자면, 네 회오리가 엄마를 끌어당긴 거야— 자연스럽고도 강력하게. 엄마는 그걸 느낄 수 있었어. 엄마의 숨결 사이에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도 넌 이미 그 중심을 만들고 있었지. 말 한마디 없이도 말이야. 그 중심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어.
그리고 그 첫 번째 회오리가 10개월 동안 조용히 자라고 자라서, 드디어 엄마가 너를 처음 만난 그날,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움직임’으로 너의 존재를 보여줬지. 이 얼마나 멋진 시작이니. 너의 삶은 그때부터 이미, 온 우주를 휘도는 작은 나선처럼 반짝이며 돌고 있었던 거야.
이제 세상에 나오고 나서는, 너의 신체적 성장과 함께 내적인 성장을 위해, 두 번째 회오리를 키워간단다. 그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야. 겉으로는 잔잔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종종 작은 회오리가 일어나거든. 이 회오리는 혼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지러운 감정이나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회오리 속에서 다층적인 흐름을 지나면서 우리는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하게 된단다. 성장은 결코 고요한 직선이 아니란다.
먼저, 우리는 누구나 배움을 통해 성장의 문턱을 넘게 돼.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존재가 갓 태어난 아기야. 아기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잖아. 반복되는 먹고 자는 사이클 속에서도 조금씩 변화를 감지하고 체득한단다. 손을 뻗어 만져보는 행위, 낯선 소리에 놀라는 순간, 익숙한 얼굴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는 반응들까지. 처음엔 단순한 모방일지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아기는 ‘보는 법’ 혹은 '관찰하는 법'을 배워간단다.
하나를 알게 되면 두 개가 보이고, 두 개를 알게 되면 네 개가 보이고,...... 그렇게 그 시선의 확장은 비례가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거야. 그렇게 배움은 마치 나선처럼 점점 더 넓은 궤도를 그리며 확장해 나가지. 이러한 시선의 확장은 유아기에만 국한되지 않아.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사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지. 우리는 끝없는 경험 속에서 새로운 '앎'을 마주하면서, 처음에는 단순한 정보였던 것들이, 어느 순간 ‘맥락’을 가지고 다가오고, 그 맥락은 곧 그 맥락 너머의 ‘의미’를 읽어내기 시작한단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기 시작하는 거야.
그렇게, '나'라는 존재가 나선의 중심축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비로소 세 번째 회오리가 본격적인 힘을 얻기 시작한단다. 이 세 번째 회오리는 너와 세상이 서로를 만나며 만들어가는 흐름이라 할 수 있어. 타인의 시선, 낯선 경험, 이해와 오해, 관계와 거리 속에서 생겨나는 복잡한 회전이지. 너는 이제 단지 내면에서만 머물지 않고, 바깥의 세계와 호흡하며 너라는 존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게 돼. 내면의 성장이 토대가 되어, 외부 세계와의 만남 또한 더욱 깊고 풍부해지는 거지.
너는 점점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고, 더 다양한 사람과 경험과 마주하게 되지. 그러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훨씬 더 다채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거야. 그건 그저 보고 아는 것의 확장뿐만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의 경계 자체가 넓어지는 일이란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진동이 계속될지도 몰라.
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너만의 시선, 너만의 이해, 너만의 길이 생겨나는 거지. 그리고 그 진동이 계속될수록, 너는 점점 더 깊고 넓은 회전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자라나게 되는 거야. 그건 더 이상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 아니라, 너 스스로 진동하고 회전하며 만들어가는 너만의 궤도인 거지.
그렇게 네 삶은 외부로 뻗어가면서도, 내면으로 수렴하고, 다시 새로운 회오리를 낳는 방향으로 이어지게 돼. 확장은 밖으로 커지는 게 전부가 아니야. 밖으로 나아갈수록, 안쪽도 깊어져야 진짜 확장이 되는 거니까.
아이야,
엄마가 말하는 이 세 가지 회오리 이야기, 어지럽게 느껴지니? 하지만, 그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순간에 잠깐 스쳐가는 어지러움일 거야. 방향을 잃는 게 아니라, 방향이 하나만이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일 수도 있고 말이야.
이 세 가지 회오리는 겉으로 보면 마치 각자의 궤도로 도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리듬이 흐르고 있어. 마치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말이지. 하나의 톱니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른 톱니도 그 힘을 받아 함께 돌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첫 번째 회오리, 생명의 진동이 시작되면,
두 번째 회오리인 내면의 성장이 그것을 품에 안고 자기만의 회전을 시작하고,
그 회전은 결국 세 번째 회오리인 세상과의 만남으로 이어지지.
그리고 그 만남에서 다시 새로운 자극과 질문이 생기고, 그건 또다시 내면을 흔들고, 처음의 진동을 다시 불러오는 거야. 결국 이 회오리들은 단순히 앞에서 뒤로 흘러가는 선형의 흐름이 아니야. 오히려 서로 얽히고 감싸 안으며, 너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구조지.
이제, 세 개의 회오리가 너 안에 자리 잡으면, 그 3개의 회오리를 너 안에 품고, 이제 네 번째 회오리, 너만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야 한단다. 그것은 단지 위로 향하는 상승의 이미지만을 포함하지는 않아. 나선은 직선처럼 단호하지도 않고, 원형처럼 반복되지도 않는단다. 그 안에는 전진과 후퇴, 멈춤과 확장이 얽혀 있어. 그러니 이 계단을 오른다는 건, 어쩌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또 하나의 세계를 통과하는 일인지도 몰라.
가끔은 멈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할 거야. 하지만 나선형 구조 안에서의 '나'라는 중심축을 한 바퀴 돌아, 다른 각도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거든. 그러니, 너는 빠르게 직선을 그으며 나아가지 말고, 또 어떤 이들처럼 평평한 원을 그리듯 익숙한 자리에서만 맴돌지 말고, 점점 확장되는 나선형 회전으로 움직이도록 해. 이 나선은 너의 내면이 깃든 리듬이며, 너의 시간과 감각이 빚어낸 궤도야. 그러니 굳이 타인의 속도나 방향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어. 성장은 비교를 모르는 고유한 여정이니까.
그리고 이 나선형 계단에는 끝이 없단다. ‘꼭대기’라는 말조차 어쩌면 어울리지 않아. 중요한 것은 어디에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지금 어디쯤을 통과하고 있느냐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선은 늘 너의 과거를 품고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힘이 날 거야.
그렇게 중심축에 선 ‘나’는 변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거지. 나는 늘 같은 '나'이면서, 동시에 매번 '다른 나'로 살아가는 거란다. 그러니, 이 계단은 누구의 것도 아닌 너만의 길이어야 해. 네가 감각하고 해석한 삶의 곡선을 따라 나선형으로 펼쳐진 길 말이야.
아이야,
며칠 전 우리 함께 갔던 그 갤러리 기억하지? 나선형 계단이 있었잖아. 엄마는 그 계단을 천천히, 빙글빙글 돌며 올라갔단다. 처음엔 재미있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방향감각이 흐려지고, 어지럽고, 현기증까지 났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엄마는 문득 삶도 이와 같다는 걸 다시 느꼈단다.
삶도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조금씩 새로운 시야를 만나고, 감각이 달라지고, 그 변화에 때로는 중심을 잃기도 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 거야. 그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나와 마주하고, 진짜 성장을 하게 되니까.
어떤 날은 계단이 가파르고 숨이 찰 거야.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빛이 드는 창이 보이고, 그 빛을 따라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게 될지도 몰라. 살다 보면 그렇게 수많은 감정과 선택의 순간들을 지나게 된단다.
엄마도 실수하고, 자책하고, 너무 아파서 멈춰 서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어.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흔들림들이 오히려 엄마를 더 깊게 만들어주었더라. 마치 회오리가 바깥으로만 퍼지는 게 아니라, 안으로도 모이며 중심을 세우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 기억하렴.
너의 회오리는
너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고,
너를 살아 있게 만드는 생명력이야.
그 회오리의 움직임을 멈추면, 작아지거나 사라지거나, 혹은 너 아닌 어떤 환경이나 사람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휘말려 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너의 회오리를 잃지 마. 비록 처음엔 작은 힘으로 시작하더라도, 계속해서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너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가속이 붙은 듯 돌아가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게 너만의 흐름이고, 너만의 삶이야.
다만, 너의 회오리를 누군가 대신 돌리게 하지 말고, 너의 중심이 아닌 다른 기준에서 돌리게도 하지 말았으면 해. 처음엔 네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힘든 순간이 온다면, 회오리 속에서 변신하는 세일러문을 떠올려봐. 한 바퀴, 또 한 바퀴. 결국엔 눈부신 빛으로 다시 나타나는 그녀처럼, 너도 그렇게 너만의 빛으로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 나갈 수 있을 거야.
언제나 너를 믿고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