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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잘못하면 어떻게 될까?

사유의 시작, 엄마의 유산

by 근아

사유하는 너에게 – 엄마가 쓰는 편지


사랑하는 딸에게,


“너는 어떤 영혼을 지니고 있는가? 어린아이인가? 허약한 여자? 가축? 폭군? 들짐승?”


새벽 독서모임에서 이 문장을 들었단다. 그 순간, 엄마는 움찔했어. 누군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왜냐하면, 그 말을 듣기 전 엄마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혹시 지금의 나는 유관순 열사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엄마의 생각이 엉뚱하지? 그 이야기를 오늘 해줄게.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를 통해 엄마가 너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것은, 너의 ‘건강한 독립’이었어. 그리고 너처럼,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지. 그 마음은, 유관순 열사가 가슴에 태극기를 품었던 것과도 닮아 있었던 것 같아.


엄마 혼자만의 바람이 아니었어. 30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이 프로젝트는, 어느새 엄마에게는 하나의 만세운동처럼 느껴졌단다.

하나의 외침, 하나의 소망.

엄마는 그 속에서 ‘유산’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지.


엄마가 너에게 한 달 동안 했던 이야기들, 기억하니? 네가 너만의 생각을 가지고, 너만의 삶을 찾고, 너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며, 네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는… 그 말들. 사실 그게 다야. 그것이 엄마가 너에게 주고 싶은 유산의 전부였어.


요즘 한국에서는 ‘7세 고시’ 이야기가 이슈가 되고 있다더라. 그걸 보면서 엄마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 어떻게 아이들이, 고작 일곱 살에 시험과 경쟁 속에 내몰려야 할까. 학교가, 사회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지 못하는 현실. 그 속에서 자란 엄마는 누구보다 그 고단함을 잘 알아. 초등 4학년때부터 예*학교를 위한 입시준비를 시작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지금 엄마가 호주에서 너희를 조금 더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시절의 나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몰라. 호주의 교육을 보면서, 엄마는 정말 부러웠어. 중학교부터 이곳에서 자란 너를 보며도, 유치원 때부터 이 환경 속에서 자란 건호를 보며도. 아이답게 자라는 모습,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 자기 생각을 스스로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거든.


그런 너희를 보며, 한국에서 여전히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말하는 많은 엄마들이 떠올랐어. 그래서 엄마는 더 간절해졌단다. 엄마의 글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닿아, 단 한 아이의 미래라도 바뀔 수 있기를. 엄마의 작은 외침이 어떤 아이에겐 삶의 방향이 되어주기를. 그 바람이 너무 간절해서, 스스로를 유관순 열사 같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너는 대학생이 되었지. 세상이 넓어졌고, 네가 생각해야 할 것도, 마주쳐야 할 것도 많아졌어.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지. “이제는 사유가 필요해.”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사유’라는 것이 꼭 대학생이 된 후에 필요한 걸까?

아니야. 엄마는 이제야 깨달았어.
아이들이 유튜브나 AI에 익숙해지기 전에,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처음이자 중요한 양육의 시작이라는 걸. 그런데 그 생각과 동시에, 엄마는 많이 아쉬웠어. 그 시기에 너희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남았거든.


아니, 대화를 안 했던 건 아니야. 우리 참 많이 이야기했지.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대화들의 깊이가 얕았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달라졌다는 걸 너도 느낄 거야. 그런 대화를 너희가 아주 어릴 때부터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


그래서 요즘 엄마는 ‘사유일기’를 쓰고 있어. 예전엔 그냥 떠오른 아이디어만 일기로 적었다면, 지금은 그 생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솔직히 써보려 해. 그 과정에서 엄마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도 함께. 일기를 쓰며 사유한 그 과정을 또다시 기록으로 남기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문득 히틀러가 떠올랐어. 조금 이상하지? 하지만 곧 알게 되었어. 생각이라는 것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말이야. 히틀러도 생각을 했지. 그러나 그 사유는 생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어. 그렇게, 사유는 때론 ‘잘못된 자기 합리화’라는 무서운 얼굴을 가질 수도 있어.


그래서 더더욱, 엄마는 생각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사유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생각해야 하는지도 함께 배워야 한다는 걸. 그것이 진짜 교육이고, 엄마가 이제야 뒤늦게 깨달은 양육의 핵심이 아닐까 싶어.


딸,
엄마는 네가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단지 많이 알고 많이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사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유가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


그리고…
이제는 네 삶으로 독립하여,
엄마가 외쳐온 '독립 만세'가
단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존재를 통해 증명되길 바란단다.
그것이야말로, 엄마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한 목소리일 테니까.


그게 바로, 엄마가 너에게 남기고 싶은 가장 큰 유산이야.


너를 늘 믿고 사랑하는
엄마가.


2025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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