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vs 사랑

by 근아

"가기 싫다."

이유 모를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

그것을 붙잡을 틈도 없이

‘왜 나는 이럴까’ 하는 실망이 먼저 찾아왔다.


지난 수요일, 아트 수업을 앞두고 나를 덮친 마음이 그랬다.

‘가기 싫다’는 감정은 곧 ‘자기 실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실망을 붙잡는 대신,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발동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트 수업인데, 왜 나는 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만들어낸 걸까. 그 순간, 내 안의 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왜 가기 싫은데?"

- 재미없어.

- 연필 그림은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는데, 목탄 그림은 뭉개져서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

-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게 힘든 거야.


마음은 조금씩 솔직한 모습을 드러냈다.

궁금증이 플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아, 넌 아트 수업에 가기 싫은 게 아니라, 목탄 그림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게 힘든 거고, 그래서 가기 싫은 거네."

"그럼, 목탄 그림 그리는 과정을 즐길 수 있으면 되겠네?"

"목탄 그리기를 좋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내가 컨트롤할 수 있으며 되겠지?


"그럼, 컨트롤할 수 있으려면?"

- 연습을 많이 하면 되겠지?


" 그럼 오늘 아트 수업가야겠네?"

- 그렇네? 가야겠네. 즐겁게 목탄 그림을 즐기면서, 잘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겠네?!!


답은 단순했다.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자,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날 수업은 분명 달랐다. 억지로 시간을 버티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과정을 즐길 수 있을까를 탐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목탄이라는 재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무엇을 컨트롤할 수 있으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의 마무리 무렵, 뜻밖의 칭찬이 돌아왔다. 튜터는 "와, 진짜 좋네요. 이 스튜디오 안에 걸려져 있는 어떤 그림보다 나는 이 그림이 훨씬 좋아요. 진짜 잘했어요." 뿐만 아니라, 평소 말을 섞지 않던 옆자리 금발아저씨 - 동양인이라고 첫날부터 은근 날 무시하던 그 분마저 “사진인지 그림인지 모르겠다”고 수줍은 칭찬을 했다.


그때의 쾌감이란.


그 기쁨은 단순히 칭찬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끝내 내가 해냈다는 사실이 주는 쾌감이었다. 견딜 수 없다고 느꼈던 과정을 스스로 넘어선 경험, 그것이 내 마음을 환히 밝혀주었다.


‘가기 싫다’는 감정에서 출발했지만,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와 대화하며 다시 길을 찾았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무너질 것 같던 마음을 붙잡고 결국 그림을 완성했다는 것. 바로 그 경험이 내 안에 깊은 확신을 남겼다.


돌아보면,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불편한 마음을 억누르는 대신 질문으로 마주했을 때, 감정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길잡이가 되었다. 실망은 궁금함으로, 궁금함은 흥미로, 흥미는 사랑스러움과 대견함으로 이어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내면의 파도를 만난다. 중요한 것은 그 파도를 피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묻는 것이다. “왜?”라는 단순한 질문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문이 되고, 그 문을 열고 나아갈 때 나는 조금 더 자유롭게 배움을 즐길 수 있다. 단 1~2분, 짧은 나와의 대화로 충분했다.


그 질문, “왜?”는

결국 나에 대한 관심이었고,

나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



2025. 8. 27 by 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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