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5분만 걸을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기에 몸을 풀 겸 집 밖으로 나섰는데, 그 짧은 산책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4주 내내 이어지던 비가 멎고,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두어 장 찍던 구름 사진으로는 도저히 모자라, 나는 집 앞 골목을 벗어나 더 넓게 구름이 보이는 곳까지 이끌리듯 걸어갔다.
오랜만에 강렬하게 떠오른 해는 그동안 받지 못했던 햇빛을 선물처럼 내게 안겨주었고, 마치 비타민 D의 영양분을 온몸에 직접 흩뿌려주는 듯했다. 그 따스하면서도 따가운 햇빛 주사를 맞으며, 생각보다 길어진 15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려는 찰나.
딸에게 화상 전화가 걸려왔다.
3개월의 방학을 마치고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간 딸아이였다. 늘 집에만 있던 엄마가,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던 엄마가 길을 걷고 있다니—그 소식이 무엇보다 기쁜 듯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그 모습을 보자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다시 언덕 오르기를 시작했다. 30여 분간 이어진 딸아이와의 쫑알쫑알한 통화 덕분에, 나의 산책은 5분의 계획에서 어느새 45분의 걷기 운동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붉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나는 집 밖으로 이끌렸다. 강렬한 일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일출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급해졌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운동화를 꿰어 신고, 정말 ‘냅따’ 뛰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절대 뛰지 않을 내가, 그날의 일출 앞에서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일출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 위 기차역을 향해 달렸다. 시간은 촉박했고, 숨은 거칠어졌다.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통증마저 기묘한 즐거움으로 다가왔고, 나는 일출을 마주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에 이끌려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출은 순간이었다.
아직 반밖에 가지 못했는데, 하늘은 이미 차분해지고 있었다.
나도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늘, 구름, 해, 그리고 당연히 우리 딸.'
이 모든 이들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를 걷게 하고,
나를 뛰게 하고,
나를 도전하게 하며,
내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깊은 즐거움 속에서
나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게 한다.
나는 그 안에서 살아 있음을, 온전히 느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오랜 짝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마음 깊이 깨닫는다.
〈내가 가리키는 것〉 브런치북 30편의 글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제 글을 읽고 함께해 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