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오면 보이는 것들

by 근아

지난 월요일, 시드니 씨티에 다녀왔다.

날이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을 듯해서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비는 내렸고, 그 비를 그냥 맞고 다니기엔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내려 일찍 씨티를 떠나왔다.


트레인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씨티를 벗어나면서

다른 곳에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멀리 보이는 구름을 보며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한발 물러나 그곳을 벗어나자 비로소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구조와 흐름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전체를 바라보는 순간 개별적인 장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내 마음의 진실 또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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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에만 내리던 그 비는 마치 어떤 경계선을 기준으로 갑자기 멈춘 듯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비’라는 것이 내가 서 있던 장소와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하나의 징표처럼 느껴졌다.


같은 하루, 같은 시간임에도 누군가는 비를 맞으며 걷고, 누군가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흔히 모든 것이 동일한 흐름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각자의 하늘을 따라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 하나로 하루 전체를 단정 지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혹은 모든 것이 흐릿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칸막이처럼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는,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나 시선에서 시작한다.

같은 날씨도, 같은 장소도,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듯이 삶 역시 내가 어디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비 오는 씨티를 빠져나와 맑은 하늘을 보게 되었던 그 순간처럼, 지금 흐리고 무거워 보이는 어떤 현실도 사실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비 또한

나를 조금 다른 하늘로 이끌기 위한

작은 신호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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