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국여행 EP.07
7박 10일의 영국여행을 오며 내가 한 일이라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한 것이 전부였다.
새벽 6시, 히스로 공항에 도착,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숙소에 가서 짐을 맡겨두는 것.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영국용 eSIM을 구입하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짐을 보관해줄 곳이 있는지 물었더니, 뜻밖에도 전날 밤 이미 숙소 정리를 마쳐두었다며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들어가도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국에 오자마자, 모든 일이 이렇게 수월하게 풀리다니.’
내가 고른 숙소는 사실 우연히,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해진 곳이었다. 처음 숙소를 알아볼 때만 해도 예약하려던 곳이 따로 있었다. 비수기라 할인까지 해주는 숙소였다. 예상보다 런던의 숙소비가 저렴하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번 영국 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예약을 하려던 순간, 우리 여행 일정의 중간 날짜에 이미 다른 예약이 잡혀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다른 숙소를 찾아 여러 집을 살펴보다가, 문득 ‘여기다!’ 싶은 곳을 발견했다. 새벽에 일어나 가족들을 방해하지 않고 ‘북클럽’을 진행할 수 있는 작은 1인실이 딸린 2베드룸의 집. 게다가 지하철역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렇게 서둘러 예약을 마치고 주변 지도를 살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곳은 바로, 노팅힐이었다. 내가 수십 번도 넘게 돌려보았던 그 영화 속, 바로 그 동네.
공항에서 30분 남짓 지나, 그 숙소에 도착했다.
하얀바탕에 빨간 원이 그려진 '체리온'이라는 카페옆 블랙 문. 바밀번호를 누르고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 201호가 우리 숙소였다. 7일간의 우리집.
내가 차지한 방은 책상이 있는 작은 1인실이었다. 여행을 갈 때면 새벽에 홀로 일어나, 늘 호텔방 구석에 램프 하나만 켜두거나, 로비로 내려가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번엔 다르다. 나만의 방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든든했고, 첫날부터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잠시 침대에 기대어 내가 있는 곳을 한참 바라보았다.
영국 땅을 밟고 있다는 실감이 서서히 밀려왔고,
노팅힐의 공기 속에 스며든 도시의 고요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나’ 또한 느껴졌다.
여행의 본질은 어쩌면 머무름의 다른 형태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공간에 몸을 두고, 익숙하지 않은 리듬 속에서 다시 나를 정돈하는 일.
여행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멈추기 위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나의 내면이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만드는 ‘정지의 시간’.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려 애쓰기보다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순간'을 배운다.
익숙한 장소에서는 오히려 나를 잃기 쉽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흘러가기에, 나조차도 그 흐름에 휩쓸려 버린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하고,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나’의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
잠깐 동안의 생각의 시간에서 일어나, 나의 자리를 천천히 꾸며본다.
벽을 향해 있던 책상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벽을 등지고 창을 마주한 자리,
그곳은 이 낯선 공간 속에서 내가 영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내 시선을 만들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영국에 우리 집이 생겼다.
낯선 도시의 한 모퉁이에,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꿈을 만나러 영국에 가다> 브런치북은 월, 수, 일요일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