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랜딩 과정을 공개합니다. Ep. 12
저는 호주에 5년째 살고 있는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입니다. 본 글은 1인기업가로의 저의 출발이자 저의 브랜드 '더미그나(theMe Kunah)'의 창조과정을 리얼하게 공개하는 글이므로 1편부터 읽어나가시길 권해드립니다.
오늘은 더미그나가 하는 일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하지만, 디자인의 특성상, 디자인이 완성되기 전, 모든 것을 공개하지는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엄마! 선물!'.
무심코 아들이 툭! 내민 종이에는 혼자 식탁에 앉아 열심히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초등4학년인 아들의 그림.
여기서 더미그나의 1st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아들은 캐릭터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포켓몬 캐릭터를 따라 그리면서 캐릭터 그리기 실력이 일취월장, 이제는 전문가 수준이다.
내가 아들에게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내 앞에 놓인 캐릭터는 왠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저 포켓몬 아이들 같지는 않아 보였다. 슥슥 대충 그린듯 하지만, 왠지 많은 메세지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
"이거 네가 만든 캐릭터야? 아니면 따라 그린 거야?"
"내가 만든 거"
"너무 귀여운 걸!!! 얘는 무슨 동물이야? 사람이야?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했어? 아들~"
아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 혼자 허공에 폭풍 칭찬만을 해주고,
그날은 그렇게, 아무런 일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다.
다음 날, 오전.
거실 소파에 누워 잠시 쉬고 있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들!!! 우리 그거 이모티콘으로 만들까?"
"뭐"
"네가 어제 그린 캐릭터!"
"응"
아들은 시큰둥했고, 나는 흥분해 있었다.
브랜딩을 시작하고, 어떤 제품을 메인으로 잡을 것인가 고민하던 참에, 브랜드의 가치에 가장 걸맞은 캐릭터가 탄생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캐릭터라 왠지 대박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아들 덕분에 더미(theMe) 캐릭터가 정해졌다.
그리고, 현재, 나는 그 더미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개발 중이다. 대략의 캐릭터 모습은 디지털로 작업이 끝났고, 구체적인 디테일의 수정이 필요한 상태이다. 예를 들어 팔의 위치, 눈 사이 간격, 입의 디테일 …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캐릭터의 색상!!! 이게 가장 어려운 점이다. 사실, 이 때문에 캐릭터 작업을 마무리 못하고 있다. 실제로, 더미 캐릭터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색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색을 사용하기엔 좀 우중충해서, 지금 거의 한 달째 고민 중이다.
아들이 캐릭터를 그린 건, 1월 21일. 여전히 그 캐릭터는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핑계나 변명은 아니고… 신기한 경험이라고 할까.
더미 캐릭터를 바로 개발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브랜드 론칭을 위한 펀딩 1차. 그리고 현재 준비 중인 펀딩 2차에서 정신없이 브랜딩과 굿즈상품들을 작업하느라, 그 캐릭터를 이용한 아이템들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그렇게 더미 캐릭터의 개발은 자연스레 조금씩 미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내가 미쳐 더미 캐릭터를 챙겨주지 못하는 사이에도,
더미 캐릭터는 스스로 생명력을 만들어,
쑥쑥 자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스크린 속에 그려놓기만 한 아이였는데,
이미 내 생활 속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피노키오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자기가 누구인지 자꾸 나에게 어필하는 느낌이었다.
아들은 뜬금없이 캐릭터의 메인 스토리는 이러하다며 술술술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더미 캐릭터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여러 상황 속에서 마주하면서, 더미 캐릭터를 더욱 이해하고, 왜 이 캐릭터가 더미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지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더미 캐릭터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미 캐릭터의 짝꿍도 만들어 주었다.
심지어, 더미 캐릭터는 나를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 넣어 놓으면서, 자신의 감정까지 모두 느껴보라는 듯했다. 이건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나니 이제 그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더미 캐릭터는 자기만의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이 더미 캐릭터를 만들어 성공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생명력을 스스로 만든 이 캐릭터를 세상에 아주 잘 내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을 내가 할 때까지, 그리고 이러한 다짐들을 내가 할 때까지, 더미 캐릭터가 나를 기다려준 걸까? 그런 생각도 든다. 정말 나는 내 일만 했을 뿐인데, 나의 브랜드가, 더미 캐릭터가 알아서 자신들이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서 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더미그나 브랜드와 더미 캐릭터를 쫓아가느라 바쁘기만 하다.
이제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할 때다. 더 이상은 더미 캐릭터 개발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더미 캐릭터가 만들어준 모든 스토리를 정리하여, 이모티콘으로, 동화책으로, 굿즈 제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틀 전 읽은 책의 문구가 떠오른다.
"(하나님께서) 너에 대해 분명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너의 천부적인 글솜씨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언젠가는 우리 민족 모두가 너를 칭송하게 될 것이며, 네가 쓴 글은 가죽 책으로 만들어질 거야. 그리고 네 글 속의 진리와 아름다움은 희망의 별처럼 온 세계를 밝히며 영원히 남겨질 거야." 오그 만디노 (주1)
나의 마음도 이러하다.
아들이 4살일 때, 내가 아들의 말을 동시로 지어 동시집을 만든 이유도 이러했다.
(이건 매주 일요일, 브런치북에 연재 중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aypaper04 )
이번에 아들이 그린 캐릭터를 세상밖으로 내놓는 마음도 이러하다.
다만, 아들이 어려서 스스로 하지 못하는 일이니, 엄마인 내가 대신해서 해 주는 것이다. 그게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할 의무 같기에. 내가 디자이너로써 해야 할 의무 같기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같기에... 그리 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 또한
더미 캐릭터 속의 진리와 아름다움이
희망의 별처럼
온 세계를 밝히며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
피노키오처럼.
(주1) 아카바의 선물, 오그 만디노, 학일출판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