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누군가 태양계는 어떤 행성으로 구성되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까지 외치고 입 안에서 '명'소리를 우물우물 댈 것 같다. 해! 까지 외친다면 정답이겠지만, 기어코 명까지 뱉어낸다면 틀리게 된다. 정답을 맞출 순 있겠지만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든다. 분명 태양계의 가장 작은 천체 '명왕성'은 어릴 적 읽었던 우주 과학 책에 그려져 있었다.
2006년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공식 퇴출되었다. 명왕성이 퇴출된 주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명왕성의 궤도는 타원형이다. 그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는 해왕성의 궤도와 겹치고, 또 어떤 날은 해왕성보다 앞서기도 한다. 수-금-지-화-목-토-천-명-해 가 되는 것이다. 명왕성의 작은 크기도 문제였다. 학계에서는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한다면, 근처에 위치한 수많은 작은 천체들까지도 행성 지위 부여를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명왕성을 행성이라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물론 문제 제기를 곧바로 명왕성의 지위에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그 이유는 행성의 크기와 궤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명왕성이 적당한 질량을 갖추고 있고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에 '행성'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2006년 명왕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행성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태양 주위를 공전해야 한다.
둘째, 충분한 질량과 중력을 가지고 구(球·sphere)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기존의 기준에 따르면 명왕성은 명백히 행성이었다. 그러나 명왕성만 한 크기의 다른 수많은 천체들이 해당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태양계 안의 행성이 수천 개로 늘어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논쟁 끝에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다. 명왕성을 태양계에서 퇴출시킬 수 있는 기준 하나를 추가했다.
셋째, 공전궤도 상에 있는 자신보다 작은 이웃 천체를 깨끗이 청소해야 할 만큼 지배적이어야 한다.
당시 명왕성 근처에는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의 천체가 수천 개 존재했다. 또한 명왕성의 궤도는 해왕성과 겹치기도 했다. 따라서 자신의 공전 궤도에서 지배적인 천체로 분류될 수 없었다. 세 번째 새로운 기준을 투표를 통해 추가한 끝에 명왕성은 공식 퇴출되었다.
자 그럼 과학자들이 명왕성을 행성으로 '채택'했던 시점을 생각해 보자. 당시에 명왕성은 앞서 존재했던 행성의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천체였을 것이다. 더해서 당시의 과학자들은 관측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해왕성 궤도와 겹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명왕성 만한 수많은 천체도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찔하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명왕성을 함부로 행성이라 부를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 지식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술로 관측할 수 있는 데이터로 알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발견하면서 어떤 과학 이론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고, 또 어떤 개념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과학이 발전하는 모습이다. 한정적인 데이터 속에서 인간은 자연 현상을 지식화하기 위해 일종의 합의를 해야 한다. 예컨대 명왕성이 행성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현재 확인한 데이터로 보아 명왕성을 행성이라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믿음은 과학적 지식(진리)의 형태로 변해 우리가 읽는 책이나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과학적 진리이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가 자주 쓰는 관용 표현처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어떨까?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진리는 무너지고 명왕성처럼 새로운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연함'이다. 우리는 어제도 해가 동쪽에서 떴고, 오늘도 그랬기에 내일도 어김없이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라 아주 아주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과학적 진리에 대한 인간의 태도이다. 옛 과학자들이 명왕성을 행성이라 여겼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명왕성을 퇴출했던 시점은 어떠할까? 과학자들은 세 번째 '행성의 지배력'에 관한 기준을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투표란 무엇인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민주주의적 절차이다.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사회적인 것이다. 찬성과 반대를 나누어 투표하고 다수결에 따라 세 번째 기준을 추가했을 터인데, 점점 더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어느 학생이 과학 시험을 쳤는데,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라고 답했다. 학교에서는 아마 정답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저명한 과학자가 학교에 항의문을 보낸다. "명왕성은 행성입니다. 누가 뭐래도 행성입니다..." 그는 2006년 당시 세 번째 기준을 추가 삽입하는데 반대표를 던진 과학자였다. 과학 지식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당시 투표장에 모인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관측 데이터를 보고 있었을까? 만약 2022년 현재와 2006년을 비교하자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관측할 수 있는 데이터 자체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더욱이 그렇게 명왕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라면 서로 합의를 통해 믿을만한 관측 데이터 하나를 두고 토론했을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과학의 발전 방식이다. 과학자들은 서로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그것들 중 일리 있다고 여겨지는 해석, 즉 해당 투표에서는 다수의 의견(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다)이 과학적 진리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새로운 데이터를 관측해 그동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렇듯 과학적 진리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명왕성은 가만히 있었다. 과학자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 명왕성을 태양계 밖으로 내쫓았다.
한편, 최근에는 다시 명왕성을 복권해야 한다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다. 명왕성은 물론이고,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의 수천 개의 천체, 그리고 심지어는 지구 주변을 도는 달까지 행성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달까지 행성이라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이 변화해왔던 과정을 본다면, 또 그렇게 터무니없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은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이 맞겠거니... 하고 믿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