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귀걸이
아이가 방학일 때는 프리랜서 남편이 작업실 대신 집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데, 나에게는 이 부녀가 삼시세끼를 어떻게 조화롭게 잘 먹느냐가 최대 관심사이다. '밥-밥-밥' 조합은 아무리 해도 질리고 물리니 '밥-면-밥' '시리얼-밥-면' '스프+과일-밥-밥' 등 다양한 조합을 생각하고 제안한다. 남편 또한 지난 몇 년간 이런 패턴에 단련이 되어 아이에게 스파게티면 삶는 방법, 과일 자르는 법, 떡볶이 만들어 먹는 법 등을 꽤 잘 전수했더랬다.
세끼 사이사이 왠지 허전한 듯하여 간식거리들도 갖춰놔야 해서, 지난 주말에는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그중 창고형 마트를 정말로 오랜만에 갔다왔는데, 역시나 우리처럼 인구 수가 적은 집은 살 게 별로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견물생심이라고 가격 비교를 안 할 수가 없고, 하게 되면 그간 비싸게 주고 산 것 같아 배도 좀 아파오고 그랬다. 결국 다음 한 주 아빠와 딸이 입이 심심할 때 먹을 수 있도록 가쓰오우동과 완탕, 모짜렐라 치즈만두를 카트에 담았다.
내가 가족들의 세끼를 준비할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쌀'과 '물'에 관해서다. 평소 알뜰한 편도 못 되고 때로는 '평생에 한 번인데 어때'라는 마인드로 살다 변변히 돈도 못 모았으면서, 우리 입에 들어가는 이 두 가지는 정말 잘 챙기고 싶다. '쌀과 물'은 여러 번의 소화과정을 거쳐 몸과 마음 속을 타고 흐르며, 우리의 근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뼈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던 중 쌀은 물론 우리가 즐겨먹는 식재료들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놓은 <탐식생활>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의 재료들을 천천히 떠올려봤다. 아직은 그동안 내가 활용해온 재료들의 이름들만을 정리해놓은 수준이지만, 여기서 좀더 업그레이드된 일상 아티스트가 되려면 그 재료들의 품종과 특징, 영양 등을 좀더 세세하게 파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탐식생활>이라는 책은 나에게 동기 부여를 충분히 해준 셈이다.
여전히 마트의 가공식품 코너를 기웃거리며 가족의 간식을 찾는 워킹맘이지만, 무궁무진한 식재료 월드 입구 앞에서 어떻게 둘러볼까 고민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그러려면 지도를 잘 봐야 할텐데, 우선 채소와 과일 들을 많이 활용하니 그쪽부터 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