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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림 Jan 01. 2019

7.일단 100개만 해보자

골든볼 애드벌룬

ⓒmaywood

매년 12월이면 탁상달력과 다이어리를 고르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 결정장애 증상을 자주 보인다. 때로는 그 해 씀씀이가 좀 심했다 싶으면 가계부 후보들도 쭈욱 나열한다. 탁상달력과 다이어리야 회사에서 일하면서 옆에 끼고 산다지만, 가계부는 1월을 보내고 2월 지나 3월쯤 되면 '카드명세서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뭘' '올 겨울에는 내 옷 한 벌 안 샀잖아, 미용실도 거의 안 갔고'라고 나 스스로를 달래면서 조용히 책장에 꽂아두기 일쑤이다. 


'마이 그린 테이블' 작업도 그렇게 작심삼일로 끝날까봐 가족 빼고는 주변에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때로는 널리널리 공표하면 그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들 하지만, 왠지 좀더 해본 다음에 알리고 싶었다. 그때 내가 속으로 되뇌인 말이 '그래, 100개는 해보고 결정하자'였다. 


100개라는 숫자가 얼만큼 큰 숫자인지 이번에 알았다.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때로는 작업노트에 메모하고 스케치도 해보면서 일주일에 2-3개를 하면 열심히 한 셈이다. 한달에 10개 정도 한다고 했을 때 10개월을 끈기있게 해야 하는 숫자였다. 


그런데 실은 70개 이후부터는 세어보지를 않았다. 갯수를 세는 데 의미가 없어진 거였다. 그저 한 작품 한 작품, 엄마이자 회사원인 내가 온전히 '메이우드'가 되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소소한 습관이 되었다. 길을 걸을 때도 나무들을 올려다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어느새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그들의 이면을 보려 애쓰고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정적인 것이었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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