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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Mar 06. 2017

불편함으로 가득했던 어떤 활동에 대해

생각의 하루 3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17박 18일의 일정으로 모 대외활동에 참가했다. 요약하자면 일본에 가서 축제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의 이름을 달고 참가하는 활동이었고 해외에 가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 그것은 굉장한 떡밥으로 다가왔다. 말도 안 되는 자소서를 제출하고 '합격'이 되어 가게 된 활동은 여러모로 불편함을 주었는데 그 내용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여성 혐오를 얼마나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될 예정이다. 뭐 즐거운 이벤트도 가득한 활동이었다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

여담이지만 활동이 끝날 무렵 누군가는 '이 활동은 나이 어린 여자가 오면 불이익이 너무 많은 활동'이라고 요약했다. 


1. 조장의 배분. 

어느 활동들이 그렇듯이 단체가 있으면 단장이든 조장이든 '장'이라는 직책을 단 사람들이 생기는 법이다. 그게 뭐 필수는 아니다만 일단 그 활동에는 현지단장, 단장, 각 조 조장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나이 많은 남성이었다. 조장이 죄다 남자라는 사실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했을 때 이를 들은 어떤 언니는 '조장은 나이 많은 남자가 맡는 게 원칙'이라며 일축했고, 그게 원칙인 줄 알고 찾아봤지만 애초에 그 활동에는 어떠한 회칙이나 강령도 없었다. 애초에 그러한 약속이 부재한 곳이었던 것. 그러한 분위기들이 모여 나이 많은 남성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재참석 비율.

한 번 이 활동을 한 사람은 원한다면 다음 연도의 활동에 참가할 수 있다. 그들의 비율을 따져보았을 때 일단 20대 후반 남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신기한 점은 처음 참가한 사람들의 비율을 따져보면 20대 초중반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렇기에 나이 어린 여성들의 저조한 재 참석률은 의외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3. 역할 배분과 엄마라는 호칭.

활동 특성상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을 쓰는 일들이 많았다. 이런 일들을 남성들이 맡아서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고, 애초에 몇몇 일들은 '남자만을' 원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성 평등 내규를 도입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조별로 음식을 주로 만드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었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기 때문에 일단 고마운 마음이 있는데 그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엄마'라는 호칭을 얻었다(1조 엄마, 4조 엄마 같은 식으로). 밥 해주는 사람에게 무조건 엄마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엄마의 역할을 고정시키는 차별이며 혐오로 해석될 수 있다. 

호칭이라고 하니 생각이 나는데 나는 원래 오빠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연상을 사귈 때조차 오빠라는 말을 쓰지 않았고 오빠가 아니라도 선배, 썜, 00 씨와 같이 쓸 호칭은 많았기에 여기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애초에 상호 존대의 분위기가 부재했고(그만큼 나이주의가 만연했고) 따로 쓸 호칭이 애매했다. 덕분에 나는 선배라는 말을 몇 번 쓰다가 나이 많은 남성들이 불편해하는 덕에 오빠라는 말을 써야만 했고 아직도 톡방이나 가끔 만날 때 오빠라는 말을 할 때마다 매우 찜찜하다.


4. 여자력 여자력 여자력

일본인들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름이 익숙지 않은 탓인지 '걔 있잖아, 덩치 크고... 어 어깨 넓은 여자애'라거나 '그 세 자맨데 제일 이쁜 애.'라는 식으로 사람을 칭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일단 그런 것도 굉장히 불편했는데 그런 자리에서 누가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썼고, 내가 그 단어에 불편함을 표한 것에 대해 '나는 칭찬을 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다. 사실 그런 사람이 대다수였고 평소에 안 그런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냈던 나로서는 그런 '보통의 인식'에 더더욱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하니까 또 생각난 것이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일본 내에서도 추운 걸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날이 추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다 코트에 반스타킹을 신고 다니길래 그게 좀 신기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맞아, 너무 예쁘지 않니? 그런데 한국애들은 말이야 등산을 다니는지 학교를 다니는지 죄다 등골 빼먹는 패딩만 걸치고... 이해가 안 돼."라고 답했다. 놀랍게도 그 누군가의 직업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였고, 청소년 혐오 범벅에다가 팩트체크도 엉망인 발언에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5. 섹드립.

술을 먹으면 섹드립도 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과의 동의가 있을 때를 전제로 한다. 나는 그곳의 술자리에서 나의 성생활까지 간섭받아야 했다. 자세한 내용을 쓰기 더러울 정도.


6. 성추행과 차후의 문제.

성추행을 당했다. 요약하자면 35살의 현직 교사이자 1도 내 스타일이 아닌 아저씨가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으며 추근덕댔고, 나는 귀국하자마자 고소미를 먹일 작정이었지만 단체 내에서 결판을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공론화를 시켜버렸다. 매우 복잡하긴 한데 이 과정에서 나와 우리 조 사람들은 '너네 마음대로 공론화시키려고 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해라'라는 말을 들었고, 나중에는 나와 대화... 라기엔 거의 싸움이었지만 그런 의사소통을 하다가 빡이 친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너만 옳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내가 더 세게 말했다간 네가 나까지 공론화시켜서 엿 먹일까 봐 말도 못 하겠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했다. 공론화를 한 이후에는 일본인 총책임자 같은 사람이 '남녀가 같이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놀기나 합시다'라는 말도 했다. 최종적으로 그 가해자를 퇴출시키는 과정에선 나름 선배노릇을 많이 하던 사람이 나와 다른 피해자 언니에게 '쟤를 쫓아내면 너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냐(가해자가 현지 단장이었고 몇 년 동안 그 단체에서 일해온 사람이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강한 멘탈을 선물해주신 여러분들께 박수를 드립니다.


이상 어떤 활동을 하며 겪은 불편함 들을 정리해보았다. 비단 이 활동뿐만이 아니라 다른 활동들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을 것이고, 더한 문제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선의의 마음을 가지고 참가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수적일 것이다. 사실 그보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는, 아니 최소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라고 고려할 수 있는 지능과 공감능력이 필수적인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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