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강박증"

by Ryan
"시선 강박증"


학창 시절 한 친구가 얘기를 해줬다


"넌 왜 이리 눈치를 많이 보냐"


난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 난 그런 적 없다고 적극 부정했다. 눈치를 본다는 건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친구가 얘기해 준 이유는 이거였다.


밥을 먹을 때나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주변을 많이 본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 밥을 먹고 얘기하니 눈치를 많이 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내가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나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그랬다고?'


어렸을 적에 길을 잘 기억한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랬다. 한 번 본 길은 잘 기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길을 정확히 기억한다기보다는 주변을 자주 살폈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는 건물이나 간판들 말이다. 머릿속에 그런 것들을 저장해 놓고 다음에 오면 다시 꺼내서 비교하는 것이었다. 노력하거나 연습해서 생긴 습관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자주 봤다. 사람도 그랬을 것이다. 의도해서 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고 기억했다. 독특한 걸음걸이, 움직임 같은 것 말이다. 관찰력이 좋은 것으로 얘기할 수 있겠다. 나는 관찰력이 좋은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눈치를 많이 보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그랬다고?'


참 신기한 것이 친구가 무심코 한말 그리고 가볍게 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신경 쓰이는 것이다. '눈치를 많이 보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라고 말이다. '아니면 정말로 눈치를 보고 있었나?'... 어느샌가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는 의식하고 신경 쓰는 시선처리가 되었다.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가 그 이후부터 시선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생겼다.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길거리에서도 말이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러한 강박은 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인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은 주로 상대방의 기분이나 행동이 어떨까 하는 짐작이 주를 이룬다. 하고 싶은 말을 필터링 없이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고 싶은 말을 너무나 많은 필터링을 하게 되면 내가 한 말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될 때가 많았다.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을 수 있다. 시선에서 말까지 넘어왔으니 말이다. 의식의 흐름으로 봤을 때,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시선과 말이 아주 동떨어져 있는 개념은 아니다. (물론 내가 좀 예민하고 소심과 신중의 경계선 놀이를 즐기는 타입이라 더 그럴 것이지만)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항상 웅크리고 있으니 말과 행동에서 나온다.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곧 남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면 모르겠지만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곧 남이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나를 결정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외향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다. 그리고 생각도 그렇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주체적이지 않고 끌려다닌다는 그런 말은 아니다. 내가 대외적으로 행동하고 말을 할 때 상대방을 의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건 단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신중해진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과 생각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극도로 화가 치밀거나 도저히 내 주장을 굽힐 만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쉽사리 화를 내거나, '틀렸어!' , ' 그게 아니야!'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시선이 주는 강박에서 신중함을 찾았다. 시선이 주는 강박에서 나를 한 번 더 살펴보게 되는 부지런함도 찾았다.


학창 시절에 생긴 일차원적인 강박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생기면서 말이다. 이제는 눈치 본다는 얘기는 듣지 않는다. 주변을 볼 때 아무도 모르게 빠르게 보는, 눈치 보는 것 같지 않는 기술을 체득했다. 일차원적인 강박을 없애고 나니 이차원적인 강박이 생겼다. 남을 의식하는 것이다. 남을 의식하다 보니 신중함과 부지런함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이차원 강박은 없앨 수 없다. 남을 의식하는 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닌 듯하다. 대신 새로운 방법이 생겨났다. 강박이 주는 어감이 좋지은 않지만 이런 강박이 생기니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과 의지, 그리고 행동들이 나타난 것이다. 마치 레벨이 있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랄까?


첫판 왕을 깨고 나니 두 번째 판이 나오고 그 판을 깨기 위해 갑주를 업그레이드하듯이 강박을 극복하기 위해 심신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게임하고 다른 점은 심신의 노력에 끝판왕은 없다. 시련이 있어야 발전이 있고 발전을 하다 보면 다시 시련이 오고... 이래서 마음의 수양에는 끝이 없다고 말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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