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by Ryan
"트라우마"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한다. 헤엄치고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보단 계곡의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있는 게 좋다. 쉽게 그을리는 피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건 물이 무섭다. 바다나 물을 떠올리면 가고 싶고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 이전에 혹시 또 쥐가 나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트라우마라고 하던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광안리로 놀러 갔다. 친구 아버지가 부산으로 발령이 나셨다. 우리는 아버지 댁에 머물며 방학 때 좋은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 학생 신분으로 여러 날을 놀러 가는 게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정말 재밌고 즐거웠다. 매일매일 뭐하고 놀지 고민하고 맛있는 거 먹고 돌아다녔다. 당연히 바닷가에 갔으니 해수욕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한참 즐겁게 놀고 있을 즈음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쥐!~~~ 라는 외마디와 함께 물속에 꼬르륵했다. 바로 옆에 친구들이 있어서 나를 부축해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열심히 쥐 난 곳을 주무르면서 보니 꼬르륵했던 그 지점은 물이 허리 정도에 오는 그리 깊지 않은 곳이었다. 깊이를 떠나 그 순간 정말 무서웠다. 창피한 것도 있고 해서 친구들한테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무서웠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허허허... 친구들에게 이리 말했으나 나에게 그 일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나 보다. 그 이후로 바다나 물 생각하면 그때 일이 떠올랐다. 바다나 물을 생각하는데 쥐 난 다리가 떠오르다니... 아예 물 근처에 안 간 건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 수영도 잠깐 배웠고 수영장 가는 것도 좋아했다. 그랬던 내가 그 이후에 물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그 생각이 나고 생각을 하다 보니 또 쥐가 날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드는 것 아닌가. 정말 다리가 조금씩 굳어지는 듯했다. 수영은 나와 영원히 이별했다.


군대에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으면 취미가 생긴다. 제대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기엔 하루하루가 매우 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 때에는 군생활이 26개월이었다. 병장을 달고 제대를 2~3개월 남겨두면 정말 시간이 안 간다. 취미가 필요한 시점이다. 책을 보는 사람, 공부를 하는 사람, 다양했다.

난 운동을 했다.

제대하면 사고 싶은 옷이 많았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군인 아저씨의 때를 벗기 위해서 말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인지 살은 찌지 않았다. 이제 멋진 몸매를 만들어야 했다. 벌크업을 위해 역기를 들었다. 혈기 왕성한 나이고 나름 군인이니 무게가 중요치 않았다.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었기에 일단 무거운 걸 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힘으로 들어 올리던 어느 날, 순간 아차 했다. 들어 올리다 어깨에 통증이 온 것이다. 옆에 동료가 없었다면 내 몸으로 역기가 떨어졌을 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 괜찮아졌다 싶어 다시 역기를 들었다. 어깨가 다시 아파왔다. 제대할 때까지 역기를 들 수 없었다. 꿈에 그리던 제대를 한 후 1년 정도 지났을 때 헬스장을 갔다.

혹시나 하고 가벼운 역기를 들었는데 역시나 어깨가 아파왔다. 병원에 갔더니 몸에 이상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때 다친 기억 때문에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아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몸에 이상은 없다'라고 하셨다. 물에 이어 두 번째 트라우마가 생긴 시점이었다. 10년 넘게 역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다시 역기를 들으면 어깨에 통증이 온다고 생각될 것 같다.



바다를 좋아한다. 들어가는 게 아닌 바라보는 바다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름 바다보다는 가을이나 겨울바다를 좋아한다. 물론 여름에도 친한 친구와 동해나 서해를 가지만 바다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회 한 접시와 소주 한잔에 바라보는 바다를 즐긴다.

걷기를 좋아한다. 굳이 역기를 들지 않더라도 운동을 좋아한다. '동적인 것을 좋아한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주말이면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근교를 걷는다. 꽤 긴 시간을 걸으며 음악을 듣는다. 운동과 감성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극복하라고 있는 게 트라우마일 수 있다. 아니면 살짝 비틀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바다가 무섭다고 안 가는 게 아니고 바라보는 바다를 즐기고 굳이 무거운 것을 들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운동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살짝 옆에서 바라보거나 비틀어서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그 방법으로도 어려운 게 인간관계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아닐까 한다. 내가 바꿀 수 있고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것과는 성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선입견이 되고 선입견이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 수 있다. 경험을 해보기도 전에 경험 자체를 하기 싫어한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비슷한 사람끼리 성향이나 단체로 묶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만의 고유함은 다 다르다. 그런 다름을 보기도 전에 보는 것 자체를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자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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