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 증후군"

by Ryan
"야식 증후군"


의대를 나온 사촌누나가 집에 왔었다. 나의 식습관과 근래 불어난 체중을 보더니 첫마디가 야식증후군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굳이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았다.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고 알고도 못 고치고 있었던 나쁜 습관에 대한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행동하지 않는 고민이 쌓여갔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할 뿐 현실에서 변화되는 것은 없었다. 몸은 편해지고 뇌만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뇌도 편안한 것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바로 책상 의자에 몸을 기댔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편한 의자에 책상 위로 두 다리 편히 뻗고 눈만 움직였다. 그렇게 하다 보면 손이 심심해지고 입이 심심해진다.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일시정지와 함께 냉장고를 연다. 주섬주섬 이것저것 꺼내온다. 저녁도 먹었으니 칼로리 낮은 음식 위주로! 일찍 저녁을 먹은 날엔 영화 두 편은 금방이었다. 영화엔 맥주지! 간단한 차림으로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고 안주를 산다. 역시 칼로리 생각을 한다만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 중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나 스스로 이건 좀 괜찮을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의 안주를 사 온다. 다시 영화 보다가 졸리면 잠든다.


일이 틀어지든 잘되는 이 모든 것을 신경 안 쓰는 나만의 시간은 점차 일상이 되었고 서서히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좀 찐 거 같긴 한데 아직은 괜찮네...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저녁 먹고 나면 뭐 먹지 말아야지! 안 먹을 생각은 했지만 움직일 생각은 안 했다. 다시 저녁을 먹자마자 굳은 결의로 책상에 앉는다. 이번엔 먹지 말고 영화만 봐야지... 어느 순간 편의점에 있는 나를 발견한 건 계산대 앞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사촌 누나에게 그거 야식 증후군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한 용어만 몰랐을 뿐.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며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 안 받고 아무 생각 없으려고 영화를 보면 어느샌가 손에 먹을 게 쥐어져 있다. 이미 뇌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거울을 보면 눈에 보인다. '아직은'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그동안


"이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이런 거야"


라는 생각으로 망가진 내 몸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오늘부터 운동해야지, 먹는 걸 줄여야지라는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바꾸기로 했다.


걷기를 참 좋아했다. 그것도 빠른 걸음. 걸어서 1시간 20분 정도 되는 거리의 회사를 다닌 적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20분 정도 되는 그 거리를 퇴근할 때 걸어서 퇴근했었다. 운동의 목적도 있었지만 걷는 게 좋았다. 그 이후에도 걷는 걸 좋아했다. 퇴근 후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저녁 먹고 걸었다.


나에게 맞는 건 걷는 거구나. 책상에 다리 뻗고 앉아있는 시간만큼 걷기로 했다. 대신 무리하지 않기로!

빠르게 걷다가 힘들면 쉬었다. 속도를 줄여 산책하듯이 걸었다. 일단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만큼을 움직이는 시간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먹었던 시간에 먹지 않는 것, 그것도 포함되었다. 어찌 됐든 (-)는 아니더라도 (0)은 만들자라는 마음이었다.


요즘도 열심히 걷는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지거나 그런 건 없다. 인터넷에 나오는


"유산소만 하면 살이 안 빠져요"


라는 글은 안 본다. 살을 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쉽게 포기할 거 같아서다. 난 살을 빼려는 게 아니고 야식 증후군을 없애기 위해 운동을 한다. 목표를 다르게 잡으니 이거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먹을 건 다 먹는다. 그리고 약속이 생기면 술도 마시고 안주도 많이 먹는다. 살을 빼겠다는 목표였다면 그 자체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먹은 만큼 다음날 걷고 걷는 시간만큼은 무언가를 먹지 않고 움직이니 여러모로 기분도 좋다.


그래도 운동이란 걸 시작하니 체중계에 올라가 보긴 한다. 궁금하니까.

500g도 안 빠졌다.


다행히 마음가짐은 "500g 안 찐 게 어디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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