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좀 풀려서 바람도 쐴 겸 멀지 않은 아버지 묘에 다녀왔다. 문득 아버지에 대해서 글이 쓰고 싶어 져 무작정 쓰기 시작하는데, 나의 영세한 글재주로 멀고도 아득한 얘기를 하려니 어떤 얘기부터 써내려 가야 할지 막막하다. 이 A4 용지를 어떤 이야기로 채우고 어떻게 끝맺음을 해야 할까?
21세기를 맞이하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운 밤을 보낸 지 삼사일 만이었고, 아버지의 꾸지람에 처음으로 큰 소리로 대든 지 이삼일 만이었으며, 자책감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단팥빵을 말없이 건넨 지 하루 만이었다. 2000년 1월 4일, 나의 아버지가 죽었다. 전화로 급히 전해오던 소식은 ‘위급하다’가 아닌 이미 ‘사망했다’였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고 전날 밤 내가 건넨 단팥빵이 아버지 생의 마지막 빈약한 아침식사였다. 그때의 기분은 글로써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 가없는 슬픔을 어찌 글 따위로 표현하겠는가. 언어가 닿지 않는 차원의 슬픔을 글로 쓰는 순간, 그건 가공된 인문학적인 슬픔이 아니겠는가. 종로 한복판에서 한참 젊음을 까불고 있던 나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금기의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오열하는 내 앞에서 어느 누구도 빨간 코트를 지적하지 못했다. 나의 빨간 코트는 나이에 맞게 발랄했지만 그 흑백의 공간에선 난감하고 무례했다.
내 슬픔의 바탕은 유전자에 각인된 생의 기억이었다. 가장 가까운 혈육의 인연으로 이십 년 가까이 같이 했던 생의 기억. 난 느닷없이 단절된 생의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울었다. 52세에 이른 과부가 된 어머니는 상복을 입은 미성년 동생들을 보며 환장할 막막함으로 까무러치듯 온몸으로 울었고, 외동아들이었던 아버지를 평생 홀로 키우셨던 할머니도 자식을 앞세운 어미로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어린 동생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슬픔의 무게가 버거워서 그러나 기댈 곳 없어서 주저앉아 울었고, 친척들은 이 어린것들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냐며 울었다. 죽음은 참 슬픈 일이었고 장례식장은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삶과 죽음이 운명이라면, 그때 내가 마주한 운명은 폭력적이었고 난 운명 앞에 무력했다. 의사의 사망선고는 의심할 여지없는 의학적 사실이었다만,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죽음’은 믿을 수 없었다. 내 머리 위의 하얀 핀도, 어린 남동생 팔에 채워진 완장도, 영정 속 평화로운 아버지의 표정도..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 먹었는데 맛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계속 났다. 배고픈 생리적 현상도, 맛있다는 감각도, 산 자가 부리는 파렴치한 여유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울면서 밥을 먹었고, 잠이 와서 졸다가도 얼른 깨서 울었다. 아버지를 땅에 묻을 때, 눈이 많이 왔다. 땅 속에 묻는 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보내는 듯한 또 다른 이별이었다. 하도 울어서 어디까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갔다. 발로 땅을 더디고 서있는 것이 나인가. 하늘을 날며 까악 우는 것이 나인가. 나는 지금 올려다보고 있는가. 내려다보고 있는가. 하얗게 날리는 건 눈인가 내 눈물 부스러기인가. 그 장소에서 나는 희미하고 아득했다.
살았던 시간의 최종 심판이 끝나고 환생을 준비한다는 49일째가 되어 아버지의 무덤을 다시 찾았다. 주변 저마다의 다른 무덤들도 남겨진 이들의 슬픔과 사연들을 끌어안고 부풀어 있었다. 죽은 자와 남겨진 자의 사연들이 만들어낸 공간. 저 동그랗게 부푼 공간 안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지는 않을까? 이승의 기억을 지워주고 저승으로 통하는 문이 저기에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는 저 공간을 통과하며 다음 어떤 생을 약속받았을까.
한바탕 큰 슬픔을 치르고 돌아왔지만 현실은 시간의 지속성 위에 태연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내가 살아갈 시간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구분되기도 했지만, 산 사람들은 살아갔다. 삶과 죽음은 여지없는 이분법이었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순리를 깨달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면서 난 더 이상 육개장이 맛있다고 울던 내 모습을 미워하지 않았고, 남겨진 가족들도 무덤 앞에서 울지 않았다.
봄을 기다리는 무덤들은 평화롭고 햇볕 아래 나른하다. 이제 무덤은 슬픔을 훨씬 넘어선, 그저 먼 그리움의 흔적 같은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솟아있는 무덤과 그 주변에 깨어나는 연두색 엽록소들은 봄이 꾸는 꿈처럼 보이기도, 산 자가 꾸는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존재로서 어떤 허세도 없는, 아직 파리한 어린 연두들은 나에게 “나도 산다. 너도 살아라.”하며 말을 건넨다. 이 고요하지만 맹렬한 연두들은 매년 봄 아버지가 차려주던 선물이 아니었을까. 무덤 앞, 햇빛은 밝고 바람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