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불운에 대한 영화적 명상(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Coen brothers, 2008)

by 박독수

5.


이 쯤에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는 선할까, 악할까?

나의 인생은 대체로 복받은 것인가?

아니면 불운의 연속인가?

나는 이 영화 속의 많은 인물 가운데 누구와 가장 비슷한가?

착하게 살면 언젠가는 복을 받게 되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될까?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설명 가능한가? 아니면 어떤 일은 불가해한 것일까?


살인마 안톤 시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살인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보통 사람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지키며, 작은 행운이라도 붙잡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200만불이라는 거액을 횡재한 르웰린 모스는

억수로 운이 좋은 사나이다.

그러나 행운을 온전히, 끝까지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주운 돈을 다 반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 아내의 목숨까지,

모든 것을 토해내야 한다.

또한 안톤 시거를 제거하기 위해 고용된

카슨 웰스는 분명 악인이다.

그러나 안톤 시거와 비교하면 그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어떤 불운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불운은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빼앗고 파괴할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울고, 불고해야 소용없다.

우리는 자주 이 영화 속 주유소 마트의 직원이나 르웰린의 아내처럼

영문도 모른 채 '동전 던지기'를 강요당하지만,

피할 수 없다.

피하려고 해 봐야 우리 목에 걸린 이 지독한 불운의 올가미는 발버둥칠수록 더 단단히 조여올 뿐이다.


%EB%8B%A4%EC%9A%B4%EB%A1%9C%EB%93%9C_(3).jpg?type=w773 Call it! 동전 던지기를 강요하는 안톤 시거, 운명은 불친절하다, 전후사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는 '비록 남의 일이긴 해도' 간혹 반전이나 역전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눈꼽만큼도 반전이나 역전이 없다.

권선징악? 사필귀정?

그딴 건 개에게나 줘버리라고!


끝까지 '영화'를 기대했던 보통사람으로서의 우리가

끝까지 영화같지 않은 영화를 보며 낯설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면 그것은 거의 살인마 안톤 시거 덕분이다.

누구든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안톤 시거에게 목을 졸린 채,

무겁고, 깊고 칠흑같은 그림자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된다.

나의 불운, 불행의 원흉이 저토록 무자비하고 집요하기 때문에

내 인생의 싸움이 이토록 힘들었구나 하는 위안,

그러니 실패해도 괜찮다는 변명거리라도 얻으려는 것처럼,

우리는 죽음의 강을 건너면서도 그의 눈빛을 끝내 기억하고자 한다.


%EB%8B%A4%EC%9A%B4%EB%A1%9C%EB%93%9C_(4).jpg?type=w773 자기 일에 충실했다고 해서 불운의 타켓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운의 규칙은 없다.


6.


'노인'은 가끔씩 '현자'나 '지혜자'로 여겨진다.

아프리카에는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그의 책 <월든>에서

"오늘 노인들이 진리라 여기는 말이 내일은 허망한 거짓일 수 있다."라고 썼다.


보안관 벨은 자기가 마주한 범죄 현장의 폭력성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은퇴를 얼마 앞둔 그는 자주 과거를 회상하며 시대의 변화를 한탄한다.


"The world is no longer what it used to be."


그는 '현자'로서의 노인이 아닌, 허망한 어제를 붙들고 사는 노인,

쉽게 말해 '나 때'를 그리워하는 '꼰대'인 셈이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며 앞서가고, 벨은 그 뒤를 따라가려 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꿈일 뿐이고,

그는 현실의 이 어두움, 잔인함을 이해할 수도, 견뎌낼 수도 없다.

그는 말한다


"(중략) 하지만...이해조차 할 수 없는 걸 만나러 가고 싶지는 않아."


이런 맥락에서 확실히 그는 노인이다. 꼰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걸 만나러 가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인정할 수 밖에.


"나는 꼰대다, 꼰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끝)


* 저의 글 정원 주소입니다. 잘 가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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