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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이호선 Jul 25. 2021

아들 머리 자르기_2

우리 아들 머리 이쁘게 잘라줄 미용실 어디 없나요?

그가 떠났다. 나의 머리카락을 15년 동안 길들인 그가 떠났다. 20년을 가위로 한 우물만 판 그는 지쳤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MC 일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다. 마이크를 잡기가 싫어졌다. 말을 하기 싫어졌다. 말을 하지 않고 MC를 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말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말이 안 통해서 더 좋았다. 딱 3개월까지 행복했다.

하루는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이끌렸다. 그곳에서는 이벤트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여가수의 현란한 무대 , 외국인 마술사의 공연 , 댄스팀의 역동적인 댄스 , 화려한 조명 ,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이크를 잡고 MC를 보고 있는 한 남자. 그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웃고 있다.


난 알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저 무대라는 것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이크를 잡고 있다.


치글(헤어 드레서 닉네임) 도 아마 그런 시기인 거 같다. 그래서 고향인 울산으로 떠났다. 나는 안다. 그도 나처럼 곧 서울로 돌아올 거라는 걸...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 여 와~~~


내 아들의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다. 내 아들도 나를 닮아서 옆머리가 길면 참 웃기다. 헤어스타일이 이렇게 중요하다. 왜 이렇게 시골 아기 같은지.... 역시 남자는 머리빨이다. 

누가 나의 아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져 줄까? 집 앞 미용실을 갔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역시나 예상은 항상 적중한다. 실패 #1.


이쁜 여성 헤어디자이너면 수현이가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었다. 실패 #2


아기 미용실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곳은 아기 전문이니 분명 우리 수현이 머리를 이쁘게 깎아줄 수 있을 거야? ' 

찾았다. 와우~ 아기 미용실... 잠실에 있었다. 예약하고 그곳을 방문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미용실까지 가는 길이 모험과 신비의 나라였다. 아들의 시선을 빼앗는 놀이기구와 매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 번쩍번쩍 거리는 조명 , 많은 사람들의 소음..... 중간중간 보이는 커피숍과 아이스크림 가게...

주차장에서 미용실까지 1시간도 더 걸린 것 같다. 이미 난 멘붕이다. 군대 시절 난 천리행군을 했었다. 400킬로미터를 며칠 동안 걸었다. 그때보다 100배는 더 힘들다.  드디어 미용실에 도착했다. 의자에 자동차가 달려있다. 스포츠카에 앉아서 머리를 자르는 거다. 그리고 앞 유리 앞에 TV가 달려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다. 수현이가 TV 속 애니메이션에 푹 빠지면 어쩌나? 걱정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잠깐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의자 위에서 내려온다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나 내려갈래. 나 머리 안 자를 거야. 자르기 싫단 말이야."

"왜 수현아! 머리 이쁘게 자르자. 왜 머리 자르기 싫어?"

"여기 마음에 안 든다 말이야."


이렇게 30분이 흘렀다. 미용실 사장님에게 너무 미안했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었다. 양쪽 옆 아기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기 전문 미용실에서는 능수능란하게 아기들을 달래서 머리를 잘라주는 줄 알았다. 나의 기대가 컸었다. 그들도 아기 머리 자르는 게 쉬운 게 아니었다. 그곳 미용사는 아기들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달래는 건 부모의 몫이란다. 자신들은 아기 머리만 자른다는 것이다.  일반 미용실과 다른 건 인테리어뿐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 아기 머리 자르기 또 실패 #3.


또 다른 아기전용 미용실을 찾아갔다. 분당신도시에 있었다. 역시나 실패 #4.


내 아들 수현이의 미모가 삐쳐 나온 머리에 숨고 있다. 


"수현아~~ 왜 머리 자르기 싫어?"

"치글삼촌 치글삼촌"


그는 아마 그의 인생에서 첫 가위 맛을 느끼게 해 준 치글의 손맛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우리 아들 머리 이쁘게 잘라줄 미용실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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