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쫄보이자 비겁한 겁쟁이라서 뭔가 아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지 않나, 이건 아니지 싶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 일이 눈앞에 펼쳐져도 어지간하면 그냥 지나치는 타입이다. 가령 골목길에서 중삐리 고삐리 아이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음... 녀석들 담배를 맛있게도 태우는군, 나 금연 22개월 차인데... 담배 피우고 싶네... 하면서 지나치고 만달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상대하는 일만큼 버겁고 어려운 일이 있는가. 이제는 뭔가 내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해도, 음... 그래 뭐 저럴 수도 있겠고, 이럴 수도 있겠고 하면서 지나치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시대, 각자 알아서 사는 거지. 한 마디로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나에게도 으으으, 저건 너무 불편한 광경이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 관여하고 싶어, 참견하고 싶어, 저 사람 인생에 끼어들고 싶어,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어, 할 때가 있으니 바로 서점 안에서 일어나는 몇몇 상황을 마주했을 때이다. 서점에서 아앜 내 눈! 하면서 나를 불편케 하는 광경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료 컵을 책 위에 올려놓고 책을 읽는 사람을 보았을 때이다. 주로 3~40대의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아, 저기요. 익스큐즈미, 아니, 사람이 기본적으로 머리라는 걸 장착하고 있으면, 물기가 흐르는 컵을 책 위에 올려놓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하고 싶다. 좀 크다 싶은 서점에 가면 거의 매번 볼 수 있는 광경인데 물에 젖어들 책을 생각하니 너무나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광경을 보더라도 한 번도 입을 뗀 적은 없다. 나는 태생적 쫄보이자 비겁한 겁쟁이이니까아.
두 번째로는 책을 심하게 꺾어서 보는 사람을 보았을 때이다. 노안이 온 듯한 노년층에게서 자주 볼 수 있다.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실제로 몇몇 서점에서는 책을 꺾어서 보지 말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하는데, 한번 꺾인 책은 원상복구가 어렵기 때문이다. 매대에 탑을 이루고 있는 책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어떤 책들은 심하게 꺾여 있어서, 저건 반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꺾이지 않는 마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서점에서 팔아야 하는 책을 꺾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가끔 서점에서 심히 책을 꺾어 보는 이를 만나게 되면, 저기요, 익스큐즈미, 하고 싶지만 태생적 쫄보이자 겁쟁이인 나는...
세 번째로는 매대에서 팔꿈치로 책을 누르며 책을 읽는 유형이다. 심지어 턱까지 괴고서 책을 보는 이도 있다. 부동산, 코인, 주식, 자기계발서 등등의 매대에서 3~50대 아재들이 자주 이런다. (일반화의 오류...) 덩치도 산만하고 되게 건장한 아재들이 팔꿈치로 책을 꾸욱꾸욱 누르며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기요, 익스큐즈미, 지난주에 혹시 UFC 보셨습니까? 팔꿈치, 그러니까 엘보우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단단하고 튼튼한 부위로서 사람을 한 방에 기절시킬 수도 있는 그런 무서운 신체 부위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그런 팔꿈치로 독자들에게 팔아야만 하는 책을 꾹꾹 누르고 계신 겁니다아아아아... 말하고 싶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내 책도 아니고 뭐. 몰라몰라.
서점 매대에 가면 가장 위에 있는 책들은 높은 확률로 오염이 되어 있다. 저자 마음은 저자가 안다고, 마음씨 착한 몇몇 작가들은 서점에서 가장 지저분해진 책을 사서 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천사와 같은 분들.
저자와 독자의 경계 그 어딘가에 있는 나는 그런 착한 마음을 지니지 못한다. 될 수 있으면 사람의 손이 덜 탄, 책 탑 중간쯤에서 책을 꺼내 온다. 몰라몰라, 나는 깨끗한 책 보고 싶어. 몰라몰라몰라몰라몰라몰라몰라.
그럼에도 서점에서 책이 더러워지는 모습을 보면 그게 참 불편하다. 그 컵을 치워라, 그 책을 꺾지 마라, 그 팔꿈치를 떼라, 말하고 싶어진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무엇이 남들에겐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사는 것도 그렇고 서점에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