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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26. 2024

누군가를 설레게 하는 일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군가를 설레게 할 일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글로써만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제 외모로 누군가를 설레게 하기란 영 글러먹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까지 살면서 외모가 먹혔던 적은 딱히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암담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글로써는 누군가를 설레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도 내 글이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글쟁이들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내가 늘 말하고 다니는 게 어떤 글이라도 대개는 글쓴이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 글쟁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가령 글쟁이의 실제 도덕성이 30점 정도라면, 글쟁이는 글을 통해 그걸 90점 정도로 뻥튀기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마치 사실인양. 글을 쓸 게 아니라 뻥튀기 장사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또한 글쟁이들은 어지간해서는 있는 그대로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며, 마치 평소에도 늘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구는 것이다. 실상은 개념을 밥 말아먹듯 하는 인간도 글을 통해서는 나름 생각할 시간을 가지니까 그럭저럭 인간답게 보일 수 있는 법이랄까.


그러니 어떤 이의 글이라도, 아 이 작가님은 나에게 100점짜리의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점수 보정을 하여 그 작가를 바라봐야 한다. 30% 정도는 필수적으로 내리도록 법으로 제정하면 어떨까. 이 보정의 방식에 따르면 그 어떤 글쟁이라도 70점을 넘을 수 없다. 이 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글로 환상을 덧씌운 작가라는 인간들을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글이 괜찮으면 글쟁이의 외모도 괜찮을 거라고 여기기도 한다. 아주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역시 30%를 법적으로 깎아야...


나 또한 그런 뻥튀기 인간이긴 매한가지라 몇몇 이들은 내가 쓴 글만 읽고서는, 아아 이경은 어쩌면 미남일지도 몰라, 어쩌면 목소리가 좋을지도 몰라, 어쩌면 어깨도 넓고, 엉덩이도 애플힙이고, 키도 한 188 정도가 될지도 몰라,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기대와 환상을 품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기랄.


그리하여 나는 글쟁이의 실상에 가까운 글을 <작가의 목소리>에 싣기도 했는데, 그 실상이라는 게 결국은 꼴불견에 가깝다. 가끔 셀카를 찍어, 아내에게 보이며, 이보게 와이팡, 내 글을 사랑해 주는 독자 분들을 위해, 어? 팬서비스 차원으로다가, 어? 셀카, 그래 이 셀카 사진을 sns에 올려보면 어떻겠는가? 물으면 아내는 그런 위험한 짓을 왜 하려 하느냐고,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설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학작품의 상당수 주제가 '인생무상'인 것은 그만큼 글쟁이들이 빨리 늙고 못생겨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남들은 햇빛을 보고 광합성을 하며 비타민D를 섭취하고 건강을 챙길 동안 글쟁이들은 남들과는 다르고도 빠르게 늙어가고 못생겨지는 것이다.


책을 내는 최근 몇 년간 몰라보게 못생겨지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살면서 누군가를 설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외모로는 애당초 글러 먹었고, 그때는 오로지 글로써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말, 글로써는 가능할까... 뭐, 모르겠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사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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