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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Oct 02. 2024

맞춤법 지적, 어디까지 참을 수 있나




<돈 까밀로와 빼뽀네>라는 만화에서 지쟈스가 돈 까밀로 신부에게 말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논쟁할 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열한 행동 중 하나는 상대방 말의 문법이나 문장의 오류를 가지고 트집 잡는 거다.’


온라인에서 가끔 키보드 배틀이 일어날 때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재미난 건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맞춤법을 지적하는 일은 있어도, 띄어쓰기 틀린 걸 지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면, 어째서냐면, 비코즈 띄어쓰기는 국립국어원 직원들도 어려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쨌든 맞춤법 지적만큼은 정말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많이 일삼는 짓이기도 한데, 온라인에서 치열한 배틀을 보다가 누구 한 사람이 맞춤법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지쟈스로 빙의하여 에에, 그건 좀 반칙 아닙니까, 좀 비열한 거 아닙니까, 말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나 역시 키보드 배틀을 뜨다가, 상대방이 진짜 얼탱이 없이 틀린 맞춤법을 이야기하면, 그걸 가지고 놀리기도 했지만, <돈 까밀로와 빼뽀네>를 읽고서는 그런 짓을 멈추기로 했다. 내가 비록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만화 속 지쟈스에게 이런 걸 또 배운다.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그럼에도, 직업적 특성상, 그러니까 가령 상대방이 만약 출판사 편집자라고 할 때 틀리면 몹시 없어 보이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그게 나한테는 '오랜만에'이다. 


몇 년 전 투고 생활을 하던 시절, '오랜만에'를 '오랫만에'라고 쓰는 편집자가 있는 출판사에는 원고도 보내지 않았을 정도로 나에게는 편집자라는 직업적 역량을 나누는 바로미터가 되는 단어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그렇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무언가를 하나 알게 되면, 그 알고 있는 것을 끝까지 가지고 가겠지, 생각하였으나 나이가 들고 죽어가는 뇌세포가 늘어나면서 틀림없이 알고 있던 단어도 점차 희미해진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바로미터'라는 단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아 고생을 하였다. 하아...


이렇게 점점 헷갈리는 단어들이 늘어나면서 아예 외우기를 포기한 단어들도 생겼다. 순댓국/순대국이 그렇고, 돌나물/돈나물이 그렇다. 이거 제대로 외우고 있어도, 직접 순댓국을 팔고, 돌나물을 파는 상인들이 또 엉터리로 쓰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멍청한 내 전두엽은, 아 저 단어가 저렇게 쓰던 건가... 하고서... 또 틀리게 쓰인 걸 따라 하기 때문에... 몰라몰라, 안 외울 거야...


이상은, 오늘 인터넷을 하다가 '오랜만에'를 '오랫만에'로 쓴 한 출판인의 글을 보다가... 아아, 선생님 그건 '오랜만에'라고 쓰셔야 하는데요...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가며... 아, 뭐 헷갈려서 틀리게 쓸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끔 편집자들은 일부러 틀린 맞춤법을 사용하는 개구쟁이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까 싶으면서...


상대방에게 무언가 지적질을 하고 싶을 때엔, 손가락질을 할 때 손가락 하나는 상대방을 향하여도, 세 손가락 정도는 나를 가리킨다는 점을 떠올리면, 지적질을 멈출 수 있게 됩니다,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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