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책 글 쇄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Oct 04. 2024

길티 플레저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나는 몇 가지의 길티 플레저를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말하기 너무 부끄러운 것들을 제하고 세 가지 정도를 밝히자면, 하나는 집이나 회사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보며 일어난다. 아마도 중학생 무렵 처음 새치가 돋았을 텐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새치라고 할 수 없는 흰머리들이 주로 측두엽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들을 모두 뽑아버리면 머리가 듬성듬성해져 곧 대머리가 되어버릴 것만 같지만,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보며 나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다는 허망한 꿈을 꾸며 손가락으로 눈에 보이는 흰머리들을 하나둘 뽑는 것이다.


요즘에는 눈도 침침하고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집이 있는 26층과 1층 사이를 오르내리는 그 시간에 한두 가닥을 뽑을 뿐이며, 운이 좋은 날에는 세 가닥도 뽑는다. 그리고서는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얼마 전까지 내 머리통에 심어져 있던 그 하얀 머리칼들을 엘리베이터 바닥에 휙 하고 버리는 것이다. 나이 든 쥐가 먹고서 사람 행세를 할까 봐서 밤에는 손발톱도 잘 깎지 않는 내가, 엘리베이터 바닥에는 새하얀 머리칼을 던져버리며 이까짓 게 뭐 대수냐 하는 심정으로 몰라몰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길티 플레저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보며 행한다. 알라딘에 접속해 상단 카테고리를 보면 '새로 나온 책'이 있는데, 이곳은 다시 '주목할만한 새 책'과 '새 책 모두보기'로 나뉜다. 전자는 유명 작가들이 유명한 출판사에서 기획출판하여 나온 책들이 주를 이르고, 후자는 일반 출판사 책뿐 아니라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에, 세상에 이런 책도 나오는가 싶은 책들이 올라온다. 나는 처음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목할만한 새 책들 보며 주목을 하다가, 이내 새 책 모두보기를 눌러본다. 이때의 나는 조금 비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보통의 출판사 책들 사이에서 오색찬란한 유치함을 보이며 개성을 뽐내는 보물 같은 책들이 있다. 주로 자비로 출판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 책들이다. 디자인에 대한 시각이 젬병인 내 눈에도 한숨이 절로 나올듯한 표지를 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마음껏 비웃어주는 것이다. 가장 재미난 것은 저자 사진의 픽셀이 깨져있는 것을 발견할 때인데 이때는 다소간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비출판이 틀림없어 보이는 책 중 표지로 흥미를 끌지 못한 책들은 부러 작가 소개글을 찾아 읽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 현학적이거나 예술병에 걸려있는 듯,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떠들어댄다. 그들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지만, 편집자를 거치지 않은 듯한 책에는 첫 페이지부터 비문이 등장한다. 나는 그런 책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치곤 하는 것이다.


‘탈락!’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신간을 체크하며 낄낄거리고 웃다 보면,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재미있는걸.


세 번째 길티 플레저라면 글쓰기 그 자체에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일은 몹시 죄책감이 들면서도 너무 재미난 일이기 때문에... 아... 그러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