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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Oct 08. 2024

1을 향하여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수필이나 일기, 잡문처럼 자기 체험의 산물로서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글을 제외하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 글이다.


글이든 말이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머릿속 엉켜있는 실타래를 잘 풀고 정리해서 얼마나 논리 정연하게 다룰 수 있는가에 따라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글 안에서 중언부언하지 않고 일관된 주장을 하며, 그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근거를 갖추고 있으며, 그 근거가 팩트로써 틀림이 없다면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와 문단의 나눔 등은 형식의 미를 이루게 하고, 독특한 문체나 고유한 스타일까지 더해지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레토릭이 논리에 우선일 수는 없다.


한마디로 나에게 좋은 글이란, 반박이 불가하여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이다. 어릴 때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논리를 필요로 하는 글을 쓸 때 나는 숫자 하나를 상상하곤 하는데, 그 어떤 반박의 여지가 없는 글을 숫자 1이라고 생각하며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릴 때는 늘 숫자 1을 향하여 글을 써왔다.


나이가 들고서도 늘 1에 가까운 글을 쓰려고 하지만, 이제는 눈도 침침하고, 머리도 아프고, 혈압도 오르고, 간수치도 오르고, 혈당도 오르고, 요산수치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햄버거 값도 올라, 라면 값도 올라, 물 값도 올라, 스트레스도 올라, 하다 보면 몰라몰라 그만 올려라 이 생키들아 하면서 대충 그냥 1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0.7이나 0.8에도 만족하며 글을 올려보자, 하는 게으른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가끔 그 부족한 0.2~0.3의 논리를 꿰뚫고 시시비비를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논리의 오류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최근 몇 년 간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작가님, 여기는 이렇게 고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 글이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였다면, 고치고 수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제 아무리 1에 가까운 글을 썼다 하여도, 자신의 기분을 가지고서 글을 탓하는 독자도 생긴다. 가령 내가 사용한 단어의 뉘앙스를 두고서 문제를 삼는다거나, 글의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서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단어는 사람 각자의 언어 감수성과 살아온 방식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나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단어가 누군가에겐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의 기분 나쁨을 호소한다면, 나는 그 기분까지 좋게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해 특정 단어를 문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해졌지만, 각각의 언어 감수성에 따라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결정장애, 발암, 한남 같은 단어를 쓰지만, 누군가는 그런 단어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글쓴이를 미워하기도 한다.


극단의 예를 들자면 렉카충이나 폰팔이 같은 단어는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누군가는 속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글에서 어떠한 단어를 보고 자신의 기분이 나빠졌다면 글쓴이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개인의 언어 감수성이 다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작가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단어를 사용할 수가 있죠? 작가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주제로 말할 수 있죠? 하는 문제 제기는, 작가가 사용하지 못할 단어가 무엇인가, 말하지 못할 주제가 무엇인가로 반박할 수 있는 모순의 물음이다.


내게 좋은 글이란 늘 특정 독자의 기분이 아닌, 논리에 우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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