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임태주 님은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출간 후 주변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한 글이었는데, 여러 가지 반응 중에서 "네가? 책을?" 하는 반응이 최악이었다고.
평소에 책을 준비한다고 밝히진 않았어도 다행히 출간 후에 내게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축하를 해주었고, 누군가는 놀라기도 했지만 "네가? 책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이 나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되었지만, 기억에 남는 출간 반응들이 있다.
첫째로는 또 하나의 가족 장모님. 나는 사위랍시고 평소에 말이 참 없다. 처가에 가도 해주시는 밥만 맛있게 처묵처묵 할 뿐,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도통 말할 줄 모른다. 그저 먹고 누워 자다가 나와서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입을 꾹 닫고 사는 사위라도 장모님에게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책이 나오고 두 권을 장모님께 드렸다. 장모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 사위가 작가라니... 너무 축하해."라는 말씀과 함께 여느 때와 같이 밥을 차려주셨다. 책이 나왔다고 나라는 인간이 확 바뀔리는 없고, 나는 또 맛있게 먹고 잠을 잤다.
지난 월요일 늦은 밤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카톡이 울렸다. 장모님의 보낸 카톡이었다. 책을 받아 드신 지 이틀이 흐른 시간이었다. 밤 10시 반에 울린 카톡 내용은 이랬다.
"지금 막 책을 다 읽었네. 남자가 쓴 선이 굵은 것보다는 여자가 쓴 것처럼 잔잔하더구나. 어떤 문장에는 내용에 감동보다는 표현에 뭉클함을 느끼게 되더라. 잘은 모르지만... 암튼 책 출판하느라 애썼네...! 우리 사위 자랑스러워 진심~~♡"
300페이지나 되는 책을 이틀 만에 읽어주신 것도 고마웠고, 책을 보시고 느낌 감정을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무엇보다 '잘은 모르지만...'이라는 표현에서는 날 위해서 무언가 조심스러워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사람들은 각각 책 읽는 속도가 다르다. 누군가는 며칠에 걸쳐 읽을 책을 누군가는 두 시간 만에 읽을 수도 있다. 이제는 돋보기를 써야만 글을 보실 수 있는 장모님이 누구보다 빨리 책을 읽어주시고, 늦은 밤 직접 문자까지 주셔서 나는 몹시도 뭉클했다.
책이 나오고서는 카톡에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만 알렸다. 친척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영업 일을 하고 있는 친형이 알아서 소문을 내주고 있다. 어제는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외삼촌은 주로 구미와 대구에서 지냈다.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서울에서 자란 사람. 일 년에 얼굴 볼 기회가 몇 없는 외삼촌이다. 그런 외삼촌이 형에게서 이야기 들었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외삼촌과는 떨어져 지냈지만, 어려서부터 나를 아껴주신 외삼촌은 그동안 애달팠다고 했다.
"아이고 갱화야. (외삼촌은 꼭 나를 이렇게 부른다.)
우리 갱화가 작가가 다됐노. 내가 책 여러 권 사서 선물해야겠다. 야야. 우리 갱화가 어려서 꾸던 꿈을 놓고 살아서 삼촌이 그동안 얼마나 애달팠는지 모른다. 옛날에 음악 할 때 만나던 친구들은 여전히 만나나? 갱화야. 인자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같아서 삼촌이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데이. 아이고. 우리 갱화야. 너무 축하한데이."
외삼촌은 어릴 적 나의 꿈을 알고 있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부족한 재능과 현실에 부딪혀 놓아 버렸던 꿈을 삼촌은 다시 끄집어냈다. 그렇게 꿈을 잃고 지낸 내가 책을 냈다고 하니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방에 들어와 외삼촌과 통화를 하는데 거실에서는 아내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달래고 어르고 있었다. 밖이 시끄러워서 외삼촌과의 통화를 빨리 끊고 싶었다.
사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핑계다. 외삼촌이 자꾸만 꿈 이야기를 해서, 어쩐지 나는 길어지는 통화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삼촌 너무 고마워용." 하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
나는 원래 유머 글 전문인데, 글이 너무 감성적으로 흐른다. 현철이 형 얘기를 해야겠다. 인천에 거주하는 조현철 씨. 이십여 년 전 방위산업체 다니면서 알게 된 형이다. 핸드폰을 만드는 공장에서 나는 자재를 나르고, 현철이 형은 수리를 했다. 맨날 함께 보고, 먹고, 놀던 사이. 그때는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
그런 현철이 형과도 요 몇 년간은 전화통화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고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소원해졌던 거다. 현철이 형에게 몇 년 만에 연락해서 책 나왔다고 말하면, 어쩐지 영업하는 걸로만 보일 것 같아 일부러 연락을 안 했는데, sns를 본 현철이 형이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술을 한잔 마시고 전화를 건 현철이 형의 목소리는 얼큰했다.
"야야. 경화 너 이 새끼. 너 처음 봤을 때, 뭔가 본드 불고 약 빨고 하는 새낀 줄 알았는데 책을 다 내고. 경화야. 사실 네가 페북에 글 쓰는 거 내가 쭉 지켜봤거든. 되게 진지하고 진중한 거야. 뭔가 너만의 세계가 있는 거 같더라고. 내가 알던 너랑 좀 다른 거 같아서,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봤나 싶더라고. 암튼 경화야. 네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거 같아서 형이 너무 좋다. 네가 성장하는 게 보여서 너무 좋아. 책은 꼭 살게. 경화야. 축하해."
사실 방위산업체 시절 나는 평범한 모습으로 다니지 않았다. 펑퍼짐한 허리 38 사이즈의 힙합 바지에 귀를 뚫고, 머리는 뽀글뽀글 볶고 다녔다. 구로공단 그 어떤 공장에서도 나 같은 외모는 없었다. 그때 나는 세상에 불만이 되게 많았나? 그래도 본드 불고 약 빨게 생긴 건 좀 아니지 않나?
현철이 형의 "본드 불고 약 빨고 하는 새끼"라는 표현에 나는 빵 터져버렸다. 그래, 뭐 그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구나.
현철이 형은 방위산업체 시절 내가 건네 준 CD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 목소리가 담긴 데모 CD가 아닌가 싶다. 그때 우리는 철부지 어린애들처럼 농담을 따먹고 다녔다. "내가 유명한 뮤지션이 되면, 현철이 형이 매니저 해. 내가 돈 많이 벌면 차 좋아하는 형에게 포르셰 사줄게." 뭐, 이런 농담 따위를 하곤 했던 거다.
나는 유명 뮤지션이 되지 못했다.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청춘 들은 이제 사십 대와 삼십 대 후반을 지나고 있다. 현철이 형은 몇 해 전 자신과 꼭 닮은 아들을 낳았다. 현철이 형에게 포르셰를 사주진 못했지만, 현철이 형 아들에게 포르셰 장난감이라도 사주어야겠다.
책을 사주고, 읽어주시는 분들 하나하나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