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메일

편집자님? 편집자님!

by 이경


101통. 어제까지 출판사 담당 편집자님에게 온 메일 숫자다. 작년 6월에 처음 메일을 주고받았으니,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101통의 메일을 받은 셈이고, 아마 나도 그 정도의 메일을 드렸던 거 같다. 처음은 투고 원고에 대한 답이 시작이었고, 그 후로는 계약과 편집, 교정, 출간. 그리고 출간 후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때로는 사소한 서로의 일상을 묻기도 했다.


백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고, 책도 한 권 냈던 그 시간 동안 놀랍게도 전화 통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조금 급하다, 싶을 때는 문자를 주고받았을 뿐, 신기하리만큼 전화 통화 없이 일을 진행해 나갔다. 편집자님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는 메일을 주고받는 게 편하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나온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20>을 사보았다. 편집자도 아니면서 편집자 관련 책을 보는 것은,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편집자들이 편하게 원고를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싶어서였다. 책은 꼭 편집자만을 위한 책은 아닌 거 같다. 헷갈리는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이 제공되고, 책의 부분별 명칭이나, 책을 어떻게 만드는지, 또 책 제작의 대략적인 가격까지 표기되어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특히 가장 좋았던 것은 책의 부록으로 실린 편집 체크 리스트였다.

매뉴얼.jpg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20> 중


원고(출간)를 체크하는 것에 있어 여러 가지 항목 중 가장 앞선 내용으로, 과연 편집자에게 재미가 있는지를 따져보라는 내용이었다. 열린책들 출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원고를 볼 때, 특히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는 이런 항목을 먼저 보는 거겠지.


다행히도 담당 편집자님은 내 원고를 좋게 봐주신 거 같다. 그러니까 여태껏 이렇게 메일을 백통 넘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상하게 출판사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즐겁다. 그게 비록 투고에 대한 반려 메일이라 해도 그랬다. 아마도 보통은 마구 쓰인 인터넷의 글을 보다, 나름 정제된 글을 접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고.


예전에 채널예스에서 한 편집자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모든 편집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글을 쓴 편집자가 좋아하는 작가라 함은, 자기가 연락할 때는 답이 바로 오면서, 먼저 연락하지는 않는 작가가 좋다는 글이었다. 아마도 편집자라는 직업이 일이 많고 바쁘기도 해서 이런 글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접한 이후로는, 아, 될 수 있으면 편집자님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업무 내용 말고는 메일도 드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쓸데없는 말들을 메일에 적고는 한다. 심지어는 담당 편집자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누나라고 부를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칭얼거리고, 징징거릴 수 있을 텐데.


나는 언제까지 출판사 편집자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낼 수 있을까. 아마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는 계속해서 편집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 그러고 싶다. 편집자들이 귀찮아 하든, 반겨주든. 출판사 편집자들과 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나는 몹시도 즐거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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