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신이라면> - 주민현
네가 신이라면
첫 페이지 역사와 종교를
다음 페이지에 철학과 과학을 적고
스물네번째 페이지쯤에 음악과 시도 적겠지
그렇다면 나는 눈을 감고 거꾸로 책장을 넘기겠네
(하략)
나 시 잘 안 보는데, 최근에 이 시가 SNS에서 되게 자주 보였다. 처음에 읽고서는 아, 좋네...하다가 며칠 있다 보니 자꾸 내용이 생각났다. 내용이 계속 떠오르는 글이라니, 시집을 사야겠다 싶었는데 문제는 시인의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
결국 인터넷 서점에서 최근에 나온 시집들 미리보기로 쭈욱 보았더니 주민현 시인의 시였다. '민현'이라는 이름만 봐서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89년생의 젊은 여성 시인. 이 시를 쓴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나는 어떠한 안도감 같은 걸 느꼈는데, 만약 이 시를 남자가 썼다면 나는 그 감수성에 시기와 질투를 느꼈을 것 같다.
이 시의 1연(상단 본문)을 처음 읽었을 때 이전에 어디선가 접해본 감흥이라, 대체 어디서 느낀 걸까 생각해보았더니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듣고 느낌 감흥과 비슷했다.
조용필 - <바람의 노래> 中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겠네, 로 끝나는 종결어미가 같은 것도 있겠지만, 무언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 같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이다. 아마도 주민현 시인의 <네가 신이라면>도 좋아하는 시로 남게 될 것 같다.
작은 것들을, 덜 소중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노래하고, 글을 쓰게 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