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책 계약서가 와서 빛의 속도로 도장을 찍어 보냈다. 5월 초에 투고를 하고, 5월 중순에 미팅을 하고, 6월 초에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정말 수월하게 일이 풀렸다. 이렇게 일이 잘 풀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계약을 맺었다. 이게 다 제가 글을 잘 써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는 아니고 운이 좋았던 거 같기도 하고.
출간을 목표로 처음 쓴 글은 음악 에세이였다. 1년 동안 200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고 몇 번의 계약 제안은 있었으나 책이 되진 못했다. 그때의 과정을 담은 소설이 첫 책이 되어 2019년 11월 출간되었다. <작가님? 작가님!>이라는 소설이다.
그 후에는 출판사 스무 곳 정도 던진 에세이 원고가 채택되어 올여름 출간을 앞두고 있다. 두 번째 책이다. 두 번째 책 계약을 맺고 나서는, 컴퓨터 안에 세이브해둔 원고가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번에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계획으로는 내년 초 출간이 될 것 같다.
계획대로 된다면 2019년 첫 책을 시작으로 2020년, 2021년 매년 책 한 권씩을 내게 되는 셈이다. 뭔가 꾸준히 글을 쓰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세 번째 책 계약을 맺었으니 나는 또 세이브해둔 원고가 없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글을 써야겠지만, 그래도 계약을 맺은 오늘은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글 쓰는 사람들이 SNS에 출판 계약서 사진을 올리는 걸 보면서, 나는 뭐 저런 걸 다 올리고 그러나 하는 선비 마인드가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알리고 싶다!, 나도 자랑하고 싶어!, 내가 재산은 없지만 저작재산권자라는 걸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도 든다. 이번에 계약한 원고 관련해서는 더욱 그런 마음이 큰 것 같기도 하고.
사연 없는 원고일랑 없겠지만, 이번에 계약을 맺은 원고도 이런저런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을 다 풀어내진 못하겠고, 출판사 미팅과 관련해서는 쓰고 싶은 말이 있다. 이번에 원고 투고하면서 두 곳의 출판사에서 미팅 제안을 주었다. 각각 목동과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출판사였다.
먼저 미팅하기로 한 출판사는 파주에 있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안 맞아 결국 목동에 있는 출판사와 먼저 미팅을 했다. 미팅을 하는 내내 좋았다. 담당 편집자님의 태도도 좋았고, 들려주시는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맘에 들었다. 편집자님은 그래도 파주에 있는 출판사도 만나보고 오라고 하셨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사실은 파주에도 다녀오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이건 내 성격 문제이기도 하다. 출판사에 투고하면서 거절받는 것은 그렇게도 익숙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것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출판사 두 곳과 미팅을 하게 된다면 결국 한 곳과는 "같이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텐데, 그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연애할 때도 보통은 차이는 입장이었다.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거절을 하느니, 미팅하지 않고 거절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만큼 목동에 있는 출판사와 미팅 때 느낌이 좋기도 했고. 결국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는 양해를 구하고 앞서 미팅한 목동의 출판사와 계약을 하기로 하고, 오늘 계약서를 받아 보낸 것이다.
사실 출판 계약이라는 게 출판사를 보고 한다기보다는 담당 편집자님을 보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미팅 때 담당 편집자님은 앞서 내가 낸 책을 사서 읽고 계셨다. 미팅 때 책을 꺼내 놓으셨는데 부분 부분 포스트잇이 붙어 있어서 여쭤보고 싶기도 했다.
아니, 편집자님, 책에서 어떤 부분을 체크해 두신 건가요?
미팅 때 드리려고 책을 가져갔는데, 도로 갖고 오기도 뭣해서 나는 이미 책을 사서 보신 편집자님에게 책을 드리고 왔다. 편집자님은 싸인도 좀 해달라고 하셨지만, 나는 내 글씨도 못 알아보는 끔찍한 악플이다. 싸인을 보고 좋게 봐주신 원고마저 나쁘게 보일까 봐 싸인은 못 해 드렸다. 두 번째 책이 나오면 싸인 연습을 해서 책을 보내드려야지.
출판 계약서라는 게 그렇다. 글쟁이가 언제 언제까지 글 써서 보내면 언제 언제까지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겠다. 같이 잘 만들어보자. 책이 팔리면 인세도 줄게, 하는. 나는 계약서를 받고서는 담당 변호사에게 계약서를 검토해보라고 했다, 는 뻥이다. 무명의 글쟁이에게 담당 변호사가 있을 리 없다.
그저 담당 편집자를 향한 믿음과 신뢰와 우정으로 믿고 갈 뿐이다. 그래도 출판사 얘기를 좀 하자면, 이번에 계약한 출판사는 출판 등록한 해가 1970년이다. 내가 태어나기 10년도 더 전에 책을 만들기 시작한 출판사. 어쩐지 뼈대 있는 출판사라는 느낌에 든든한 기분이다. 60년 역사의 출판사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글을 다듬어 보겠다.
아, 출판사와 글쟁이가 계약을 하면, 글쟁이를 '갑'으로 둔다. 갑이 되었으니 갑질을 해야지. 나는 담당 편집자분에게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인세나 계약기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편집자님, 편집자님이 제 원고를 검토하시고 채택하셨으니, 출간까지 꼭 맡아서 책을 내주세요. 담당자가 바뀌면 곤란합니다. 다른 조건 없이 이거 하나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님은 속으로, 이거 무서운 인간이네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편집자님은 언제 퇴사하더라도 내 책은 꼭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렇게 세 번째 책의 콤비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