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이, 받는 이

by 이경


출판사 투고로 책 두 권 내고, 세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도 여전히 인터넷 검색창에 '원고 투고', '출판 계약' 같은 걸 검색해본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책들의 사연은 다들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투고로 책을 내기는 어렵다는데 그 많은 책들은 다들 어떻게 출판사를 컨택해서 나오는 걸까 싶기도 하고.


원고 투고. 투고 원고.

글을 쓰는 이들에 따라 단어의 순서가 다르다는 게 재밌다. 출판사에 글을 보내는 이들은 '원고 투고'라는 표현을 쓰고,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보는 이들은 '투고 원고'라는 표현을 쓴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 단어의 순서가 달라지는 것인데, 이들의 평소 마음가짐도 다르겠지.


글을 출판사에 보내는 이의 마음은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시로 메일 수신확인을 해보고 이제나 저제나 언제 답장이 오려나, 그 답장은 내가 원하는 답이려나, 출판사에서는 환영을 해줄까, 문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해줄 것인가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받는 이는 대체로 투고 메일함에 큰 기대 없이 심드렁하지 싶다. 건질 것 없는 날이면 본전이고, 투고자의 대책 없는 당당함이나 단체 메일에 오히려 기분이 상하는 날도 많겠지.


글을 쓰고 책을 내려는 사람은 많은데, 출판사에서는 양질의 원고가 없다고 투덜대는 거 보면 출판은 알다가도 모를 묘한 세계다. 투고로 책 세 권을 계약하면서 여전히 인터넷 검색창에 '원고 투고'를 검색해 본다. 그 많은 책들은 다들 어떻게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나서 책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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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을 거하게 먹고 소파에 누워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다. 독일의 한 연필 공장에서 연필이 제조되는 과정을 그린 방송이었는데,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나무에서 점차 연필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니 흥미로우면서도 어쩐지 그 광경이 몹시 평화로웠다.


독일의 연필 공장 안에는 무슨 궁궐 같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 궁궐 가장 높은 층에 올라가 연필을 던져 보는 것으로 연필의 최종 품질검사를 마쳤다. 25m 높이에서 던진 연필의 흑심이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고. 25m 높이에서 던져진 연필 흑심은 멀쩡했다.


다큐 중간에는 역사적으로 '필기'가 살아남은 이유 등이 나왔다. 출판, 인쇄업이 발달하면서 필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전히 연필을 쓰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도 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있을 거라고.


다큐 방송 말미에 연필 한 자루로 그을 수 있는 줄은 수십 킬로미터이며, 쓸 수 있는 글은 4만 5천 자 정도라는 정보를 보면서, 문득 책 한 권을 쓰려면 연필 두, 세 자루가 다 닿을 만큼 써야 하는구나 싶어 졌다. 준비 중인 세 번째 책이 출간되면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 무얼 쓰든 쓰기야 쓰겠지. 연필 두 자루 분량이든, 세 자루 분량이든.


출간하고 계약한 책의 원고 세 편은 모두 보내는 이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다. 원고를 다 쓰고 출간 기획서와 함께 출판사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다. 네 번째 책을 쓰게 된다면 그때는 어떠려나.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그 많은 책들은 다들 어떻게 책이 되는 걸까, 여전히 궁금해한다. 나와 같이 보내는 이의 입장에서 쓰인 걸까. 혹은 출판사의 청탁으로 책이 된 걸까. 출판사에 투고는 나만 하나 싶어서 문득 외로워질 때가 있다. 아, 그러니까 이건 청탁받지 못하는 글쟁이의 서러움에 대한 주절거림이랄까.


글을 쓰면서 물론 가끔은 받는 이의 입장이 되기도 했다. 출판 편집자라는 사람들이 이런 글을 써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을 주었던 것인데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간 계약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보내는 이가 아닌, 받는 이로 시작하여 책을 쓰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뭐, 보내는 이든, 받는 이든 달라질 건 없겠지.

책이 되려면 써야 된다는 사실 말고는.

연필 두, 세 자루 뭐 그 정도만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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