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리셨습니다

by 이경



어제, 다음 책 담당 편집자님에게 메일이 왔다. 지금 작업 중인 책 곧 마감하신다고. 이 말인즉슨 다음 책 작업이 곧 들어간다는 얘기. 편집자님은 이어서 이렇게 얘기해주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랜 기다림. 6월에 계약했으니 반년 가까이 지난 셈이다. 계약할 때 이미 완전 원고 형태로 투고를 했던 거라, 기다림의 시간 동안 원고를 몇 번 더 들여다보고, 새로운 글도 몇 꼭지 썼다.


첫 책은 계약하고 출간까지 4개월 정도가 걸렸다.

두 번째 책은 계약하고 출간까지 6개월 정도가 걸렸다.

세 번째 책은 계약하고 출간까지 8개월 정도가 걸리려나.


계약과 출간까지의 텀이 어째서 점점 길어지는 걸까. 이러다 네 번째 책은 계약하고 1년 후에나 책이 나오려나... 싶지만 이제 써둔 원고도 없다. 뭘 쓰든 다시 또 써야지.


첫 책 <작가님? 작가님!>에서 책을 세 권 정도 내면 스스로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세 번째 책 작업을 앞두게 되었다. 책을 냈다고 출판사 사람들이나 주변에서 날 가리켜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그 호칭이 생경하고 쑥스럽다. 세 번째 책이 나오면 나는 나 자신을 가리켜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어쨌든 두어 달 뒤쯤엔 세 번째 책이 나오겠지.



한 출판사 대표님은 책을 만드는 과정을 두고 끊임없이 상상하는 일이라고 했다. 저자의 글을 상상하고, 내지 디자인을 상상하고, 표지 디자인을 상상하고, 책의 전체적인 꼴을 상상하고, 책이 나온 후의 마케팅과 판매 실적을 상상하는 거겠지.


본격적인 편집 작업이 들어가기 전이라 어떤 책이 될지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지만, 재미난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투고하면서 출판사의 반응들이 나쁘지 않아서 나름으로 기대도 된다.


무명 글쟁이인 나도 2019, 2020, 2021 매년 책 하나씩 내면, 이 인간은 뭔데 책을 매년 내는 거지? 뭔가 있는 놈인가? 하고서 관심을 가지실 분이 최소 다섯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인은 투고로 책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많은 편집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게 그나마 저자의 스펙이 뛰어나거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SNS에 친구가 많은 인플루언서 정도면 투고 원고로 출간을 고려할 수 있다고.


스펙, 전문가, 인플루언서. 나에겐 무엇도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세 번째 책이 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편집자와 미팅을 하던 날 나는 나의 처지를 알리며 물었다. 편집자님, 대체 무얼 보시고 제 원고를... 하였을 때 편집자님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글만 봅니다."


당시 다른 출판사와의 미팅도 앞두고 있었는데, 미팅 예정이던 출판사에는 양해를 구하고 출판 계약을 맺었다. 스펙도 없고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 이의 글만 보고서 선택을 해준 편집자님의 안목을 믿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오로지 글만 본다는 그 말이 나에겐 따뜻하고 든든하게 다가왔으니까.


5월에 투고하고, 6월에 계약한 원고가 이제 곧 작업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는 편집자님의 메일이 반갑고, 처음 책을 준비하던 그때처럼 또 설렌다.




작작표지.jpg 첫 번째 책 소설 <작가님? 작가님!>
골프표1.jpg 두 번째 책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넥스트 레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