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일기>를 읽다가
여덟 명의 작가가 공저로 쓴 <마감 일기>를 읽는다. 내가 당장 마감인은 아닌지라, 앞에 두 꼭지 읽고 천천히 읽으려고 덮어두었다. 읽어본 꼭지 중에서는 이숙명이라는 분이 쓰신 글 (숨바에서 온 편지)가 재밌었다. 어쩜 이름도 숙명이야. 마감이 마치 숙명적인 듯한 이름 아닌가.
담당 편집자에게 왜 마감이 늦었는지, 서간체로 푼 글인데 이런저런 마감 이야기를 하면서 능글맞게 마감이 늦은 이유를 대고 있으니 낄낄 거리면서 읽게 되는 글이다.
이숙명 작가는 예전 잡지사 일을 하며 능구렁이 같은 영화 평론가들에게 영화의 별점을 받는 일을 했다는데, 한 영감이 "연애 말고 결혼하고 싶다~"라고 했단다. 영화의 별점을 매기는 일이 연애요, 정식 지면을 받아 연재를 하는 것이 결혼이란 뜻이었다.
나도 음악 웹진에서 글을 쓰며 앨범의 평점을 매기는 일을 좀 했는데, 누군가를 비평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으면서도 이게 또 개꿀 재미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쨌거나 능구렁이 같은 영화 평론가들이 돈 안 되는 별점 매기는 일 말고, 돈 되는 지면을 바라면서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한 것이 재밌었다.
나는 이 연애와 결혼 비유를 보면서 내 입장이 떠올랐는데, 그러니까 투고와 청탁을 떠올린 것이다.
책 세 권을 다 출판사 투고로 계약하다 보니, 투고하는 게 마치 출판사 담당 편집자에게 고백하는 마음이랄까. 고백하고 보통은 까이고야 마는 슬픈 짝사랑 같은. 반면 청탁을 받는다면, 뭔가 먼저 고백을 받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능구렁이 같은 영화 평론가가 연애 말고 결혼을 바라듯이, 나도 고백하는 거 말고 고백을 받는 입장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쉽지는 않겠지. 김금희 작가는 등단하고 5년 동안 청탁이 없었다는데 나는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출판사 사람이라도 이 생키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소설을 쓰는 사람과 에세이를 쓰는 사람과 경제경영서, 자기 계발서 분야마다 다들 기회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나는 트렌드를 따르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어떤 해당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라서 앞으로도 청탁은 요원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내년에 세 번째 책을 내고서 출판업계의 편집자 선생님들이, 오호라 이 생키는 나름 글을 재미나게 쓰는구나, 중요 체크닷! 하며 관심을 가져줄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앞으로는 슬픈 짝사랑 말고 먼저 고백을 받고 싶다, 아, 나도 마감의 압박을 느껴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칼 마감의 요정이 되어 담당 편집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 없는 아주 훌륭한 마감인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고, 아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