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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권형의 결혼

by 이경

어제 일권이형이 결혼했다.


일권형과 안 지는 햇수로 9년이다. 우리는 편집장과 필자의 관계로 연을 맺었다. 한동안 세상 누구보다 내 글을 열심히 뜯고 맛보고 살펴보았을 일권형의 결혼을 축하한다.


일권형이 편집장을 맡고 있는 흑인음악웹진 매체에 필자 지원을 하고 첫 모임을 하던 날. 그는 지각을 했다. 심지어 약속 장소가 그가 일하는 곳임에도 말이다.


9년간 종종 일권형과 약속을 하고 만났다. 둘이서만 본 적은 없고 글 쓰는 사람들과 본 것인데 그때마다 일권형은 조금씩 늦었다. 싫을법도 한데 그게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주인공은 늦게 나타난다던가. 일권형은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생각 했는갑다.


어제는 정말 일권형이 주인공인 날. 가끔 악의 없이 일어나선 안 될 일을 상상해본다. 일권형 결혼식 가는 길에 결혼식 당일에도 그가 지각을 하는 게 아닐까 상상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결혼시간 10분 전에 식장에 도착했는데 일권형이 먼저 날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힙합 악수가 이어졌다.


결혼식은 유쾌했다. 주례는 없었다. 신랑이 입장하는데 객석에서 장미꽃 한 송이씩을 새신랑에게 안겨주었다. 보통 결혼식은 신부가 주인공이지만 오늘은 일권형이 주인공이라고 사회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신랑신부가 성혼선언을 할 시간. 그만 신부의 감정이 격해졌다. 일권형은 신부가 자신에게 써준 편지형식의 선언문을 직접 읽어야 했다. 스스로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 객석에선 또 웃음꽃이 폈다.

일권형이 선언문을 읽을 시간. 그동안 "결혼 했느냐?"는 질문에 "힙합,알앤비와 결혼했다"는 답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고 얘기했다. 일권형을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을 알테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주례가 없는 대신 일권형 아버님이 덕담을 건넸고, 신부 어머님이 신랑신부에게 시를 낭송하셨다. 세차례의 축가 시간이 있었다. 부부가 행진 할 때 꽃가루가 그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꽃길이 열렸다.

오후에 다른 약속이 있어 사진을 찍고서 식사도 못 한 채 나는 식장을 빠져나왔다. 많은 사람이 결혼식에서 웃을 수 있게 해줘 고맙다.


일권형은 여전히 흑인음악웹진 편집장이며 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신부는 방송 작가라고 했다. 글밥을 지어 먹어야 할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그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 날런지.


일권형의 지각이 너무 잦다 보니 함께 글을 쓰던 동료 몇몇과 이유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리를 무시하는 행태인가? 그건 아닐 것 같았다. 현실 세계에서 심각한 길치인 것이 나름 지각의 이유라고 우리는 결론 내렸다. 이제 혼자가 아닌 둘이 걷는 길. 잠시 길을 잃더라도 함께 길을 찾을 사람이 생겼으니 참 다행이다.


일권형은 신부에게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여행 많이 다니자"고 했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 일권형의 바람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리드머 강집장님의 결혼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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