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와 작가의 갑을 관계

by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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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글과 아무런 상관이 없진 않고 지금껏 출판사에 투고하여 출간한 책들.




출판사와 작가,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란 늘 일방통행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뒤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는 보편적으로 말하는 '갑', '을' 관계에서 서로 변하기도 하는 특이한 관계랄까.


지금껏 출판사에 원고 투고하여 3종의 책을 출간하였고 당연하게도 출간 계약서를 세 번 썼다. 세 번의 계약서 모두 저작권자인 내가 '갑'으로 되어있고, 출판사가 '을'로 되어있지만, 이게 말만 작가가 갑이지 TV 뉴스 방송에 종종 나오는 꼴통 갑질을 할 수가 없다.


가령 내가 슈퍼 갑질을 한다고 출판사에 대고 "우에에엑 내가 누군지 알고!" 뭐 이러면 출판사에서는, "에에엣, 당신은 무명 글쟁이 이경 아닙니까!"라는 소리밖에 더 나올까. 물론 개중에는 꼴통 갑질을 하는 글쟁이들도 더러(혹은 자주) 있는 것 같지만 초중고 바른생활도덕윤리교과 과정을 무사히 이수해온 나는 갑질은커녕 늘 '을'의 모습으로 출판사를 대하는 것이다. 아이고 편집자님, 굽신굽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고 투고라는 것이 맨땅에 헤딩과 마찬가지다. 인터넷서점이나 책 판권 등에 적힌 출판사의 메일 주소를 찾아내어, 에에 출판사 담당 편집자님, 에디터님, 선생님, 어르신, 저는 이름 없는 그야말로 무명의 글쟁이인데, 책을 내보고 싶다는 소망, 희망, 열망, 갈망이 점차 거대해져 이런 지극정성의 쓰레기, 이걸 순화된 말로는 '졸고'라고 하던데, 아무튼 여하튼 하여튼 튼튼튼, 미천한 저의 원고를 보내드리오니, 편집자님, 에디터님, 선생님, 어르신의 시간이 허락하시는 한, 굽어 살펴주시옵고, 행여나 이 원고가 쥐똥만큼이라도 출간의 가능성이 보이신다 싶으시면 그때는 저를 좀 키워달라, 하는 것이 이 투고 원고 메일의 요지랄까.


물론 이따구로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서는 아니 된다. 아니, 뭐 꼭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나도 이렇게는 메일을 안 보내봐서 결과를 가늠할 수 없으니 궁금한 사람은 이렇게 메일을 보내보시고 결과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아무튼 여하튼 하여튼 튼튼튼, 나는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맨땅에 헤딩을 성공하여 책을 내었으나, 항상 출판사(편집자)에겐, 뭐랄까, 갑이 아닌 슈퍼 을의 모습으로, 뭐 그렇다고 실제로 굽신굽신거리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늘상 배운다는 자세로 행하게 된달까. 어지간하고도 웬만한 출판사에서는 1년 간의 출간 목록을 다 짜 놓는 경우가 많고, 원고 투고로 책을 낼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도 낮으니, 투고가 들어오든 말든 상관치 않는 출판사도 분명 있을 텐데, 투고 원고에 답장이라도 해주면 그저 감지덕지하는 것이 투고자의 마음인지라, 투고자의 신분으로서는 늘 이렇게, 계약서 상의 '갑'과는 무관하게도 늘 '을'의 모습을 하게 된달까. 아이고 편집자님, 굽신굽신.


이렇게 나는 출판사와 작가의 갑을 관계를 떠올리면, 페이퍼상에선 작가가 갑일지언정, 맘속으로는 늘 내가 을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책을 세 권 내고 나니까능, 내 아무리 무명의 글쟁이라지만 몇몇 출판사의 에디터 분들도 관심을 가지시고, 음, 저 생키는 글이 좀 희한하네, 얼굴만큼은 아니지만 글이 좀 희한한 거 같아, 하고서는 좋게들 생각을 해주시는 거 같다.


그러니까 최근 들어 한 출판사 대표님이면서 편집도 겸하시는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 글쎄 이분 말씀이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기본적으로 작가와의 '갑을 관계'에서 늘 '을'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아아, 대표님, 저는 늘 편집자님들에게 '을'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렇다면 저는 기본을 벗어난 초특급슈퍼 을이었던 것입니까아아아아.


보통의 출판사들은 투고 원고로 책을 작업하진 않을 테고, 작가에게 이런이런 글을 한 번 써봐 주십시오, 하고서 제안으로 책을 만들곤 할 테니, 편집자가 늘 작가에게 '을'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대표님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내가 을이네, 내가 을이네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을을을을, 아이고 골골골골 하는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대표님과 대화는 시간을 두고 간헐적으로 조금 더 이루어졌는데, 며칠 전에는 또 글쎄, 이보게 이경 작가, 내 자네에게 기획안이라는 걸 만들어서 한번 보내봐줄라고 하는데 말이지, 라는 말씀을 하셔서, 나는 그만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하였다. 그간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하면서 원고와 함께 늘 '출간 기획서'라는 걸 작성하였다.


출판사에서는 당연하게도 무명의 글쟁이인 내가 누군지 알 턱이 없을 테니, 기본적인 저자 소개 겸 원고 소개 겸, 아 글쎄 이렇게 이렇게 기획안을 같이 보내니까능, 한 번 믿어보시라니까요, 하고서 나름의 추파를 던지는 것인데, 지금껏 행해왔던 나의 과거와 달리 거꾸로다가 출판사에서, 이보게 작가 양반, 자네 이런이런 글을 써봐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기획안을 보내신다고 하니, 그야말로 무명의 글쟁이인 나에겐 천지가 개벽할 일이랄까!




아, 그러니까 이것은 출판사 대표님에게 제가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자랑입니다. SNS의 목적은 자랑 아니겠습니까. 브런치라고 뭐 다를 게 있는가. 자랑할 거 있으면 우헤헤헤 하고서 자랑도 좀 하고, 부러움도 좀 사고, 질투도 좀 사고, 그렇게 이웃사촌들은 배도 좀 아파하고, 뭐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네? 비트코인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자랑해야지, 좀, 뭐, 왜.


그래도 진지하게 얘기해보자면, 출판사와 작가의 '갑을 관계'... 글쎄요. 페이퍼 상에선 항상 작가가 '갑'으로 되어있고, 몇 년 전 한 출판사와 작가는 계약서의 '갑을'이 딱딱해 보이니, '동행 계약서'를 쓰자 하여, 갑 대신 '동', 을 대신 '행'을 썼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그런 단어가 뭣이 중헌가,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책 출간이라는 게 늘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작가 입장에서 담당 편집자님을 존중하고 예를 다한다면 '을'의 마음으로 지내는 거고, 글쟁이가 슈퍼 꼴통이면 갑질 하는 거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무명 글쟁이 이경, 그간 투고로만 책을 작업하던 추파 인생에서, 이제 출판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인가. 두두두둥. 몰라요 몰라. 글쟁이의 앞길은 대체로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앞을 내다볼 수 있었다면 글 따위 쓰지 않고 비트코인을 샀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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