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당연히 타고나는 재능입니다. 당연한 걸 묻고 계십니까. 근데 이렇게 고작 무명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이나 보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아무래도 타고난 재능이 없으신 것 같군요. 그러니 당장 글쓰기를 때려치우시길 바랍니다,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얼마나 서운 하시겠습니까. 앞 문장을 읽으시고 순간 뒷목이 뜨끈뜨근해지 거나 반박을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면 분명 '질투'라는 글쓰기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반박은 하지 마셔요들.
사전에서 '재능'을 검색해보면 '재주와 능력'이라고 나옵니다. 글을 쓰는 데에 필요한 재능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사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도 싶습니다. 재주와 능력을 가리키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니까요.
가령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재주가 훌륭할 수 있겠고, 누구는 글의 짜임새를 잘 꾸밀 수 있겠고, 또 누군가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쓸 수 있는 재주가 있을 겁니다. 앞서 얘기했듯 '질투'가 더없이 좋은 재능이 될 수도 있겠고요.
이런 여러 가지 재능중에 분명히 타고나야만 하는 것도 있긴 할 것 같아요.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센터 포지션을 보는 변덕규를 가리켜 '키는 농구 선수에게 최고의 재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는 노래를 들을 때 가수들의 '음색'을 가장 중요시 여기기도 합니다. 음색을 결정짓는 가수의 목소리는 대부분은 타고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농구선수의 키, 가수의 목소리처럼 글쓰기에도 분명 가르쳐서는 할 수 없는 '감각'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이게 감수성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흔히 우리는 문과 감성 / 이과 감성을 나누기도 하잖아요. 한 TV 방송에서 '눈이 녹으면?' 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과 출신의 사람들은 "물이 됩니다." 같은 대답을 한 반면 문과 출신의 사람들은 "봄이 옵니다." 등으로 대답을 했듯이 말이에요. 사람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릅니다. 서로의 답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로의 답을 이해 못하고 답답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고요.
여러 가지 글쓰기 중에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장르의 글을 쓰는 데에는 분명 이 문과 감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이과 감성의 사람들이 더 잘 쓸 수 있는 글쓰기도 있겠죠. 주변을 보았을 때 이런 감각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건 아닌 것 같고 타고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감각을 제외한 대부분, 아니 어쩌면 이런 감각 또한 후천적인 노력으로 커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꼭지였던 '글쓰기의 1원칙'을 기억하시나요?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쓴다는 것. 그리고 문장을 완성하는 데에는 역시 두 가지만 알아두면 되겠죠. 주어를 쓰고, 서술어를 쓰는 것. 그러니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고 문장을 쓸 수 있을 겁니다. 글을 쓰는 데에 쥐똥만큼이라도 조그마한 재능이 있다면 노력하여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글을 읽다 보면 잘 읽히지 않는 글과 술술 읽히는 글을 접하는데요. 저는 이게 조사의 활용에서 오는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소설가는 우리말 글쓰기의 90%는 '조사'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은/는/이/가' 말이에요. 인터넷에 그런 밈(Meme)도 있던데요? 무엇이든 알려주겠다는 신(神)에게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은는이가를 구별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하였더니, 신께는 "그것만 빼고 알려줄게" 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은는이가'를 구별하게 되어 다행이지, 실제로 외국인의 신분으로 우리말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이 조사의 활용을 어떻게 할까를 두고는 머리가 아플 것 같습니다. 책을 준비하며 출판사 편집자와 원고를 교정할 때도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이 '은는이가' 같은 조사의 변경입니다. 우리말은 조사에 따라 글의 느낌이 많이도 달라지거든요. 사실 독자는 어떤 조사를 쓰든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글쓴이는 이 조사를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어울리는 조사를 바로 집어내는 것은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고 나서 조사를 변경해보면서 원문의 글과 비교해보고 하는 공을 들이는 것은 분명 노력의 범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사만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품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에 시간을 들이고 이런저런 비교와 노력을 더해보면 타고나는 감각을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알려주는 많은 작법서에서 공통으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 이죠? 저는 이 '글을 고치는' 행위가 후천적 노력의 90%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타고난 작가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작가 '이상'과 많은 시인에게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시는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시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감각의 영역이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서 저는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질투심이 조금 더 시인의 언어에 다가갈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자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글을 고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고쳐보고. 어떤 문장이 더 좋은 문장인지 모르겠다 싶을 때는, 역시 좋다고 소문난 책을 많이 읽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저는 한때 가방끈 콤플렉스가 있어서, 글쓰기를 전공한 사람들, 그러니까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신춘문예에 오랜 시간 매달린 사람들도 책을 못 내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그래도 생각했던 대로 책도 내고 이렇게 비법이랍시고 잘난 척을 하고 있잖겠습니까.
웬만한 전공자들도 해내지 못하는 책을 턱턱 내고 있는 저의 글쓰기는 타고난 걸까요, 노력의 결과일까요.
여러분, 죄송한데 저는 좀 많이 타고난 것 같습니다. 글이 막 술술 써지는 타입이거든요. 그래도 너무 재수 없게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글이 잘 써지면 뭘 하겠습니까, 책이 안 팔려서 여태껏 무명의 글쟁이인데요. 시무룩. 그러니 제 책을 좀 사서 읽어달라는 얘깁니다.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