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언제 시작되는가

by 이경



무명 글쟁이 이경입니다. 이번에는 좀 메타메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요. 저는 기성 출판사에서의 단행본 출간을 목표로 글을 써왔고, 지금까지 투고로만 책 세 권을 내었으니 그럭저럭 목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까? 이 글을 읽는 몇몇 작가 지망생 분들 중엔 분명 저를 부러워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저도 이 시리즈는 잘난 척하려고 쓰는 거니까 많이 부러워해주세요. 네?


각설하고 저는 출판사에 항상 완전 원고를 투고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과 중간, 결말까지 모두 끝낸 채 투고를 하였죠. 무명인 저와 달리 유명한 작가의 경우 뭐 한두 꼭지의 글이나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책을 시작할 수 있겠으나, 무명인 저는 그런 게 개뿔 없습니다. 무조건 전체 원고를 다 쓰고 출판사에는, 똑똑 거기 누구 계십니까? 여기 투고자가 있으니 원고를 검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는 방식으로 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감이 없는 글쓰기를 해왔어요. 보통 출판사와 작가가 책 작업을 하면, 편집자는 작가의 원고를 기다리기 마련이고, 편집자의 닦달에도 작가가 글을 뱉어내지 않으면 뭐 감금도 하고 협박도 하고 빌어도 보고 용서도 하고, 암튼 스펙터클한 경우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반면 저는 전체 원고를 투고하여 계약하다 보니 오히려 제가 편집자님의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원고는 이미 다 써 놓은 상태에서 계약을 하고 6개월이 지나 책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저는 마감이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언제까지 10편을 써야 한다면, 그 마감일 훨씬 전에 8, 9편을 써놔야 마음이 편하달까요. 심지어 청탁을 받아 글을 쓴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도 저는 마감의 압박을 느끼기 싫어 계약을 맺기도 전에 미리 원고를 써서 보내버린 적이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자님들 보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 마감 요정이 있다면 바로 저일 거예요. 네네.


<무명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 시리즈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글이지만 쓰다 보니 마침 브런치 공모전이 열리고, 또 마감까지 잘하면 글 10 꼭지 쓸 수 있을 것 같고, 근데 저는 마감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쭉쭉 쓰고 있는 겁니다. 굉장히 메타메타하죠? 브런치 공모전 떨어지면 글 묶어다가 다른 출판사에 보내보고, 네? 얼마나 좋아.


제가 올해 들어서는 출간용 원고를 거의 쓰질 않았거든요. 저는 보통 1년 12개월 중에 9개월은 생각만 하다가, 한 3개월 정도 바짝 글을 쓰는 거 같습니다. 물론 평소 SNS 등에 워낙 많은 헛소리들을 적어놔서 출간용 원고를 적을 때도 그 헛소리들을 모아 모아 뜯고 고치고 맛보고 하면서 되살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헛소리라도 여기저기 써놓으면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출간용 글이 되고 그러는 거 같아요.


어쨌든 이 시리즈는 급하게 쭉쭉 써 내려가는,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으로 떠들어대는 글이라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실 어디 가서 누구한테, 에,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합니다, 하고 가르칠만한 깜냥이 전혀 안 되는 사람인데 말이죠. 근데 왜 저는 이런 제목의 시리즈로 글을 시작하고 떠들어대는 걸까요. 단순히 공모전에 눈이 멀어서 그런 걸까요.


그건 분명히 아닐 거 같아요. 이거는 뭐랄까, 어떤 자신감이랄까. 이미 출간이 된 몇몇 글쓰기나 책 쓰기 책을 들여다보면서, 어, 음, 흠, 쩝, 쭈왑, 쩝쩝, 내가 이것보단 잘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몰려오는 겁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에서 사람들이 언제 작가의 꿈을 꾸게 되는가, 뭐 이런 내용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책을 읽고서는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을 때, 바로 그때가 글을 쓰게 되는 때라고 말합니다.


마루야마 겐지가 머리카락은 없어도 통찰력은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른 이들의 글과 책을 읽으면서, "어이쿠 이 정도는 뭐 나도 쓰겠네"라는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저 역시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칠 만한 능력이 안되더라도, 이미 출간된 몇몇 책들을 보며, 이건 좀 지나친 종이 낭비가 아닌가, 내가 최소한 이것보다는 양질의 글을 쓸 수 있겠는 걸, 싶어 이 시리즈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에겐 각자 이런 순간들이 있었을 테고 또 찾아올 거예요. 내가 이것보단 잘 쓰겠다, 일수도 있고. 내가 이것보단 잘 쓰진 못하겠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쓸 수 있진 않을까, 일 수도 있고요. 혹은, 나는 도저히 이렇게 쓸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뭔가 써보고 싶어, 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이든 그 순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뭔가 글을 써보고 싶다, 하는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모니터와 키보드 앞으로 엉덩이를 붙이게끔 할 테니까요.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 혹은 비법. 글쎄요. 저는 이런 것들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 그러니까 동기부여랄까요. 그런 게 크면 클수록 글 욕심이 생기는 거 같습니다. 머리 아픈 작법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단 한 글자도 못 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멋진 글, 혹은 정말 구린 글을 읽고 나면, 나도 쓰고 싶다! 하는 욕심이 생기니까요.


무명 글쟁이 이경은 대체 뭔데, 사람들에게 글쓰기 비법이라는 시리즈로 글을 쓰고 있는가, 겨우 책 세 권 낸 주제에 무슨 글쓰기를 알려준다는 것인가, 이따구로 글을 쓰니까 여태껏 무명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고서 제가 알려드리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글을 써보시는 것도 좋을 테고요. 글쓰기는 각자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마감이 글을 쓴다고 믿겠지만, 저처럼 마감 자체가 싫어서 미리미리 써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다음엔 글쓰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중요할까, 만들어지는 재능이 중요할까, 뭐 이런 주제로 한번 떠들어보는 것도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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