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선 정하기 - 편집 편

by 이경



나는 글을 좀 쓰는 것 같다. 책을 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마지노선을 정해놓는 게 좋다는 취지로 '인세'편을 다루었습니다. 이어서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편집 편-


저는 자비출판의 경험이 없어서 그쪽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자비출판에도 편집자는 있을 테고, 기본적인 원고의 교정교열 정도는 봐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역시나 저는 경험이 없어서 뭐라고 이야기할 순 없겠습니다.


제가 쓰는 이야기는 오로지 제가 경험했던, 기획출판과 관련된 이야기이니 역시 투고 등으로 기성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들이 참고 삼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자비출판이나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었지만 앞으로는 기획출판으로 책을 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보셔도 좋겠죠?


출판사 투고를 했든, 아니면 웹에서 재미난 글을 좀 쓰다가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든 여차 저차 해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칩시다. 글쓴이는 당연히 출판 편집자를 만나게 될 테고, 이 출판 편집자와 한 배를 타고 출간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항해를 한다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라는 게 뭐 원고 던져주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정도만 수정해주는 사람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서점에 가셔서 출판 편집자에 대한 책을 좀 보시고 정신을 차리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책을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제가 쓴 <난생처음 내 책>을 봐주세요. 네?


편집자가 원고의 교정 교열을 보는 것은 기본적인 업무이겠지만, 그 외에도 편집자는 이거저것요것조것 아무튼 어마 무시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자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일까지 해준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정신이 온전하다면 돈 안 되는 글 따위 쓰고 앉아있겠습니까? 부동산이나 비트코인 같은 거 하겠지. 안 그렇습니까?


여하튼 그렇게 정신이 온전치 못한 글쓴이를 편집자는 때로는 다독여주고, 때로는 혼도 내고 뭐 그러면서 출간을 향해 전진 앞으로 하게 될 텐데요. 이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라는 게 각자 생각이나 업무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순탄하게만 흐를 수도 있겠지만 또 높은 확률로 부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기성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아포리즘 책을 많이 봤는데요. 이제는 대문호라고 부를 만한 고전 작가들도 이 편집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작가는 편집자 말은 무조건 옳으니까 닥치고 들으라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작가는 편집자는 직업적으로 글을 너무 많이 읽는 사람이라 오히려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니 편집자의 말을 걸러 들으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글쓰기는 뭐라고 했죠? 잘 쓰는 비법 따위 없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편집자를 대하는 마음 또한 이렇게 자신과 편집자가 어떤 타입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편집자는 저자와 같은 편이지, 절대 적이 아닙니다. 편집자에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되겠죠. 이건 뭐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이기 때문에 말하면 입이 아프고, 타이핑하면 손이 아프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저를 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편집 허용 마지노선은 필요하겠습니다. 제 경우를 얘기드리자면 저는 지금까지 책 세 권을 두 명의 편집자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첫 책과 두 번째 책은 K편집자, 세 번째 책은 S 편집자와 함께 만들었는데요. 작업 당시 각각 편집 경력이 10년, 20년이 넘었던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들에게 많이 배운다는 자세로 교정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출판 편집자와 교정을 보게 될 때는 가장 먼저 PC 교정을 보고 그 후에는 1교, 2교, 3교를 보게 됩니다. 2교 3교는 다른 말로 재교, 최종교 뭐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교정을 해도 해도 끝이 안 난다면 4교 5교 6교 7교 8교 9교를 보기도 하겠지만 이럴 일은 흔치는 않을 거예요. 제가 8교 9교를 보는 편집자라면 저는 저자를 죽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는 책 세 권 모두 3교 정도에서 마친 것 같고요.


가장 많은 수정은 첫 교정인 PC 교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때 이제 편집자의 편집 방식이나 업무 스타일이 어느 정도 잡히겠죠. 편집자 분들의 입장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대체로 수월했습니다. 편집자 분이 여기여기 이렇게 고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저는 "흠, 여기여기여기는 다 고치는 게 좋겠습니다만, 저기저기저기는 원래대로 놔두는 게 좋겠습니다." 하고서요. 편집자 분이 수정의견을 주시면 특별한 의도가 있지 않는 한은 편집자님의 의견대로 따랐던 거 같아요.


제가 편집자 분과 교정을 보면서 제 마음속에 그어놓은 마지노선은 "내가 쓴 글처럼 보이는가"였습니다. 지금껏 작업한 책 세 권은 편집자의 교정을 통해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지만, 그래도 제가 쓴 글 같아 보였거든요. 저에게 어떤 '문체'라는 게 있다면 기본적인 그 틀은 부서지지 않고 지켜졌던 셈입니다. 교정 후에 아무 페이지나 살펴봐도 제가 쓴 글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작업했던 편집자들은 제가 '원래대로 되살렸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제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뭔가 저자로서 아, 내 글이 무시당하지 않고 있다,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쓴이에게 글은 자기 자신과 동일합니다. 글이 무시 당하지 않는다면 인격체로서 인정을 받는 느낌이 들죠.


자, 그럼 다른 편집자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저는 데뷔작을 내기 전에 한 출판 편집자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여러 꼭지로 이루어진 음악 에세이 원고였는데요. 그는 계약을 하기 전 두 꼭지 정도를 샘플로 편집하여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앞으로 계약을 한다면 이런 식으로 편집 작업을 하겠다, 하는 그야말로 '샘플' 교정 파일이었는데요.


그 파일의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쓴 글 같지가 않았다는 거예요. 너무 많이 달라져있었습니다. 세 줄짜리 한 문장이 있었다면 그는 하나의 긴 문장을 난도질하여, 세네 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편집자는 단문이 좋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문장 속에 제가 느끼지 않은 '감정'의 단어까지 스스로가 추가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체적으로 무미건조하고도 담백한 문체의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글 속에 제가 느끼는 감정 따위를 거의 적어두지 않았는데요. 그는 제 문장을 편집하면서 이런저런 사사로운 감정의 단어들을 추가시킨 겁니다. 행복했다느니, 다행이었다느니. 그건 암만 읽어봐도 제가 쓴 글이 아니었어요.


결국 저는 그 편집자와 작업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을 포기했습니다. 그도 저에게 사과를 했고 우리는 같은 배를 탈 운명에서 남남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 계약을 했다면 저의 데뷔는 조금 빨라졌겠지만 후회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제가 글 쓰면서 가장 잘한 일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을 하다가 책 하나를 낸 한 작가분의 볼멘소리를 본 적이 있는데요. 첫 책의 교정 작업 당시 편집자가 자신의 글을 너무 많이 고쳐서 내가 쓴 글 같지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불만을 당시 편집자에게도 털어놨었다고 합니다.


그때 담당 편집자는 그 작가분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는군요.

"출간하는 원고는 두 부류인데, 하나는 문장력을 보고 출간하는 원고가 있고, 하나는 글은 별로이지만 콘텐츠가 좋아서 출간하는 것이다. 작가님의 원고는 후자 쪽이니 과한 편집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하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재 자체는 워킹맘에 대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이게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글이 문장력에 기대는 글인지, 혹은 콘텐츠에 기대는 글인지 구분을 하시면 마음속에 마지노선을 잡고서 편집자의 편집 방향에 수긍을 하든 반대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의 글 수준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아는 게 많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글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겠습니다만, 과하게 자신의 글을 맹신해서도 곤란합니다. 뭐,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몇몇 편집자들은 교수님들 원고를 그렇게 싫어하더라고요. 역시나 몇몇 교수라는, 그러니까 많이 배우신 분들이 편집자에게 "절대 내 글을 고쳐서는 안 돼!" 한다는 건데요. 전형적인 자기 글의 맹신이자, 꼰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맞춤법이 엉망인 글도 못 고치게 한다니, 편집자로서는 속이 터질 겁니다.


저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엔 좀 부끄러워하는 타입이지만, 그래도 저에게 '작가정신' 같은 게 있다면 그건 콘텐츠가 아닌 문장력이 괜찮은 사람, 글에 오리지날리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일 겁니다. 제가 쓴 문장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에요.


그러니 혹여나 나는 문장력이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분이라면 자신의 글을 해치는 편집자에겐 반드시 선을 긋길 바랍니다. 책을 출간하게 된다는 흥분으로 무턱대고 편집자의 난도질을 방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면 나는 내가 생각해도 문장력이 형편없고, 콘텐츠가 좀 독특하고 좋은 것 같아,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편집자의 말을 잘 들으세요. 편집자는 당신의 글을 더 유려하고 보기 좋게 만들어 줄 겁니다.


물론 편집자가 가장 원하는 방식의 원고는 좋은 문장력과 훌륭한 콘텐츠가 함께 어우러진 원고가 아닐까 싶긴 하네요. 그런 원고를 쓰는 분이라면 무명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 같은 거 안 보실 것 같습니다만. 뭐 그래도 봐주시면 좋습니다.


본문에서 글쓴이의 정신은 온전치 못하다, 하는 농담 같은 진담을 이야기했는데요. 네, 물론 진담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글쓴이의 온전치 못한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그럼 오늘은 이만.





keyword
이전 10화마지노선 정하기 - 인세 편